“이거 누가 하는 거냐. 청와대 얼라들이 하는 거냐.”(새누리당 유승민 의원, 지난해 10월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기간에 발언 자료로 배포됐다가 취소된 ‘중국경도론’ 관련 외교적 대응을 질타하며)
“청와대 애들 가만히 안 놔두겠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잘 못 모신다. 청와대 조무래기들….”(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6일 김상민 의원 결혼식 뒤풀이 자리에서 음종환 전 행정관이 청와대 문건 파동 배후로 자신을 지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했다는 말. ※김 대표 본인은 ‘오보’라며 부인)
“청와대 행정관이 열심히 모시는 일을 해야지… 사실이 아닌 것을 전달하는 게 어린아이들 같다.”(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 19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건 파동 논란에 대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여권의 유력 정치인들의 발언 릴레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얼라’(어린아이를 지칭하는 방언)다. 세 발언이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대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 정호성 제1부속,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과 이른바 ‘십상시’(청와대 실세 행정관과 보좌진)에 대한 강한 불만과 불신감이 저류에 흐른다.
물론 과거 정부에서도 청와대 참모가 연루된 권력 갈등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그 수준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외 정책 갈등의 근본 원인은 단연 자주파 대 동맹파의 대결이었다. ‘반미(反美)면 좀 어떠냐’며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을 외교안보 정책의 기조로 삼아온 기존 질서에 대한 변경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불거진 것이 2006년 1월의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적 유연성’ 관련 문건 유출 파동이다. 당시 문건은 대통령제1부속실 행정관이 대통령의전비서관실 행정관을 통해 여당 의원에게 전달됐다.
국가 기밀문서가 대통령 집무실 코앞에서 유출된 것이 국기 문란에 해당한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현 청와대에서 벌어진 ‘얼라’들의 이전투구와는 성격이 좀 다른 것 같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전직 외교관은 “내부의 갈등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표출된 것이지만 그래도 국가 대외 정책의 기조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 흔적은 명백하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5년 내내 청와대에서 대외 전략을 다뤘던 박선원 전 통일외교안보전략기획비서관은 현 정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끊임없는 인사 잡음에 대해 “권력을 향한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지배하는 탓”이라고 진단했다. 청와대 내에서 소화되어야 할 국가 중대사에 대한 논쟁과 토론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구조적 결함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안은 ‘경쟁자의 팀(team of rivals)’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동안 보여 준 현 정부의 인사 패턴으로 볼 때 쉽지 않은 주문으로 보이지만 30%대 지지율로 백척간두에 선 박 대통령이 집권 3년 차를 맞아 극적 반전에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척 헤이글 국방장관의 낙마로 그 정신이 종언(終焉)을 고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1기 내각을 벤치마킹한다면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국무총리로, 안철수 의원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삼고초려 해봄 직하다. 보수 정권 8년이 다 돼 가는데도 장관급회담 한번 못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북한에 말발이 먹히는 박재규 정세현 전 장관을 통일부 장관으로 재기용하면 어떨까.
이르면 다음 주 초 청와대 조직과 인사에 대한 개편이 이뤄진다고 한다. 새 비서실장의 얼굴을 보면 박 대통령이 결단을 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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