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외신이 역대 아시아경기대회의 10대 화제를 소개하면서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한 북한 응원단을 첫 번째 ‘잊기 어려운 장면’으로 꼽았다. 미모의 여성들이 선보인 일사불란한 춤과 노래가 그만큼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북 응원단은 어제 개막한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엔 오지 않았다. 아니 오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 초 ‘통일대박’을 말했고, 드레스덴 구상으로 남북관계의 비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만든 통일준비위원회의 첫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정부의 통일정책 목표는 평화통일이며 북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교류 협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평화통일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김정은도 올해 신년사에서부터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다. 북은 6월 국방위원회 특별제안, 7월 공화국 성명 등을 통해 남북이 무모한 대결을 끝내고 화해와 단합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고 거듭 역설했다.
그러나 현실은 딴판이었다. 북은 한미 연례 연합군사연습인 키리졸브와 을지프리덤가디언이 ‘(대북) 선제타격을 노린 위험천만한 핵전쟁 연습’이라며 격렬히 반발했다. 4차 핵실험 움직임까지 보였고 각종 미사일과 장사정포를 시도 때도 없이 쐈다. 이에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을 압박하는 데 주력했다. 뿌리 깊은 상호 불신이 빚은 악순환이다.
냉정히 따져보자. 북은 과연 핵을 포기할까? 결코 그럴 리 없을 것이다. 체제 유지와 생존 차원에서 핵의 유용성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그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려 들 것이다. 북의 급변 사태는? 언젠가 일어날 개연성은 있어도 당장은 아닌 것 같다. 김일성 김정일 사망 때도 전문가들이 예상한 급변 사태는 없었다.
김정은 체제 출범 후 북의 식량 사정과 경제 상황은 어느 정도 호전됐다. 일인지배 체제에 도전할 만한 세력도 없다. 외부에서 북의 정권교체나 붕괴를 유도하기도 어렵다. 북의 상황이 불안정해 갑자기 무너질 수 있다는 견해는 지금으로선 객관적 근거가 미약한 ‘희망사항’에 가깝다. 오히려 김정은 체제가 어쩌면 꽤 오래갈 수 있다고 보고, 핵을 가진 북과 어떻게 평화적으로 공존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숙고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물론 북핵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없인 한반도 평화가 불가능한 것은 맞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국제사회가 내민 당근과 채찍이 다 소용없었는데 마냥 ‘북핵 불용’만 되뇐들 상황이 달라지는가. ‘북핵 포기-교류 협력’의 연계를 조금 푸는 것이 남북관계의 큰 틀에서 불가피하다면 차선책으로 인정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정부가 만지작거리는 5·24조치의 해제도 마찬가지다. 군사 문제는 긴 호흡의 대책이 필요하다. 남북관계의 진척 없이 급변 사태만 노려선 통일의 대가를 감당하기 어렵다.
북의 의도야 뻔하지만 응원단이 오는 것이 남북관계엔 그나마 도움이 됐을 것이다. 김정은도 “아시아경기대회에 참석하는 것은 북남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고 불신을 해소하는 데서 중요한 계기가 된다”며 의욕을 보였었다. 그런데도 국제관례대로 체재비용을 스스로 부담할 것을 요구해 북에서 응원단 파견을 접게 만든 정부의 협량함이 참 딱하다. 정부는 인공기를 내걸지 않으려고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규정에 반해 모든 참가국의 국기를 경기장 주변에 게양하지 않는 꼼수도 썼다. 자연스러운 스포츠 교류조차 활용하지 못하는 이 정부가 과연 ‘통일대박’ 운운할 수 있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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