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軍, 최고 통수권자에게도 재탕 삼탕 혁신안 내놓다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4일 03시 00분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취임 후 처음 주재한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올해 군에서 발생한 사건과 사고를 보면서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군 수뇌부는 이 상황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하루빨리 새로운 병영문화를 만들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비인간적인 병영문화를 조목조목 질책할 때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군 지휘관들이 어떤 심경이었는지 궁금해진다. 군 지휘관들이 자식을 군에 보내놓고 마음 졸이는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군의 구타 문제는 오래전에 해결됐을 것이 틀림없다.

이 자리에서 군은 가혹행위를 신고하는 병사에게 포상하는 군(軍)파라치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보고했다. 또 최전방 일반전방소초(GOP) 부대에 근무하는 병사에 대한 면회 허용 등 19개 병영 혁신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중에는 재탕 삼탕의 대책도 적지 않다. 장병의 기본권을 높이기 위한 군인복무기본법만 해도, 2005년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에게 인분 묻은 손을 입에 넣도록 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제정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아직도 법제화하지 않았다. 전에도 나왔던 대책들을 긁어모아 포장만 바꿔 내놓고 여론의 소나기를 피하려는 심산이라면 군은 여전히 정신 못 차렸다는 얘기가 된다.

군 일각에는 기강 유지를 위해 가혹행위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외부에서 군부대를 방문해 감독할 수 있도록 국방 옴부즈맨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 때문에 나온다. 그러나 군은 보안을 이유로 반대한다. 이번 혁신안에는 병사들의 왜곡된 서열 문화를 바꾸기 위한 계급체계 변경도 빠졌다. 생활관 개선 방안도 제외됐다. 모두 예산 부족, 보안 등을 이유로 수용하지 않았다. 군 ‘셀프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확인이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이 그럴듯한 보고만 받고 현장을 모르면 군의 개혁은 요원하다. 28사단 윤모 일병 사망 사건도 박 대통령은 제때 보고받지 못했다. 대통령이 군 최고 통수권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국방부의 병영 혁신안을 검증해야 아까운 젊은이들이 군에서 변고를 당하는 불행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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