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베의 ‘위안부 꼼수’ 일본 국격 떨어뜨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4일 03시 00분


일본 외무성의 영문 홈페이지에는 20일 공개된 고노 담화 검증 결과 보고서를 영어로 번역한 자료가 올라 있다. ‘새 소식’ 코너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과 한국의 의견교환 상보∼고노 담화 초안에서부터 아시아여성기금까지’라는 제목의 영문 번역판과 일본어 원문을 나란히 게재했다. 일본은 배경설명 형식의 영문 e메일 서한과 보고서 영문 번역판 등을 미국 행정부 소식통들에게 보낸 사실도 드러났다. 아베 신조 총리는 고노 담화의 취지를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홍보에 나섬으로써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기 싫다는 역사 인식을 거듭 보여주고 있다.

일본이 진실을 호도하는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데 대응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올해 5월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카운티에 미국에서 7번째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미국 내 일본인들은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시에 세워진 위안부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와 디트로이트 등에 소녀상을 추가로 건립하려는 한국 교민사회의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

일본은 이번 보고서에서 한일 양국이 고노 담화 발표에 앞서 문안을 사전에 조율한 것처럼 작성 경위를 밝혔다. 일본이 먼저 비공식적으로 한국의 의견을 묻고, 이를 비밀로 하겠다고 약속한 뒤 당시 오고 간 얘기를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외교적 신의를 저버린 일이다. 고노 담화에 흠집을 내려는 아베 총리의 꼼수를 국제사회가 모를 리 없다.

위안부 피해자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네덜란드 호주 등 여러 나라에 있다. 유엔이 반(反)인륜적 범죄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여러 차례 인정하고, 미국 유럽연합 호주 등의 의회에서 관련 결의문을 채택한 것도 이 문제가 보편적 여성 인권에 관한 국제적 현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역사적 사실조차 부정하는 아베 총리의 행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진출을 추진하는 일본의 국격(國格)을 의심케 한다. 역사의 오욕을 씻는 길은 잘못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데서 시작된다. 전후 독일이 보여준 과거사 청산을 일본이 본받아야 국제사회의 평가도 달라진다.
#일본#고노 담화#위안부#아베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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