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2시간 50분 동안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 전원에게 재난 안전 대책과 관련해 발언하도록 했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대(對)국민 담화에 담을 내용을 준비하기 위해 기존의 ‘깨알 지시’와 ‘받아쓰기 회의’에서 탈피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소식은 마치 새로운 뉴스인 것처럼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전달됐다. 헌법은 국무회의에서 정부 정책뿐 아니라 국정 평가와 분석에 대해서도 심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무위원들이 ‘발언’을 했다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 뉴스가 된다는 것은 그동안 국무회의가 비정상적이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번 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국민에 대한 사과 표시와 함께, 재난안전 시스템의 개편과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 등 국가 개조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를 비롯해 모두 네 차례 참사와 관련한 사과와 책임을 언급했지만 진정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갤럽의 7, 8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46%로 나타났다. 한 달 전에 비해 15%포인트나 떨어졌다. 이번 사고로 국민들이 충격과 절망에 빠져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뼈저리게 책임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청와대가 계획하고 있는 대국민 담화는 아직 구체적인 형식이 정해지지는 않았으나 대통령의 뜻이나 생각을 일방적으로 낭독하고 끝낼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이런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들이 박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생생한 질문들을 기자들이 대신해 묻고 대통령이 답변하는 쌍방향의 기자회견 방식이 되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사고 현장인 진도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을 방문하고, 경기 안산의 정부합동분향소를 찾기는 했지만 대통령이 앞으로 또 한 번 사과를 하러 국민 앞에 나서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도 따가운 민의의 소리를 직접 듣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의 당선 이후 이뤄진 기자회견은 올해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 때가 유일했다.
박 대통령은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아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심장이 터지는 듯한 육성을 들었을 때 그동안 참모와 각료들이 해온 보고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는지 느꼈을 것이다. 안전 대책을 넘어 국가 개조 수준으로 관료들의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약속해 놓은 마당에 일방적인 대국민 담화로 과연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겠는가. 빠르게 대처했더라면 희생자들을 살릴 수도 있었던 통한의 ‘골든타임’ 동안에 대통령과 정부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를 비롯해 진정한 소통을 시작할 때 난국의 돌파구도 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