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중경]국민의 눈높이, 역사의 눈높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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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경 객원논설위원 미국 헤리티지재단 연구위원
최중경 객원논설위원 미국 헤리티지재단 연구위원
‘국민의 눈높이’는 거역할 수 없는 절대선으로 통한다. 지난해 세법개정안 백지화 파동도 개정안이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서 생긴 해프닝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정치를 할 때 국민의 눈높이를 측량하는 데 실패하면 자리를 잃게 되므로 정치인에게 국민의 눈높이는 스포츠 게임의 퇴장명령 기준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늘 생기는 의문이 있다.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항상 절대적으로 옳은 길인가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기본원칙이다. 그렇다면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인터넷이 널리 퍼져 있는 현대사회에서 대의(代議)정치는 더이상 존속할 이유가 없는 것일까? 그저 사안마다 인터넷 전자투표에 부쳐 결정하면 될 것인가?

여기서 잠시 아메리칸 인디언 흥망사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찾는 답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유럽 이민의 유입에 따라 아메리칸 인디언은 세 갈래의 운명을 맞이했다. 이로쿼이 등 포카혼타스가 속해 있던 동부의 농경부족들은 백인사회에 동화하는 길을 걸었고 아파치, 샤이엔 등 중서부 평원의 유목부족들은 끝까지 저항하다 전멸의 길로 갔다. 체로키, 나바호 등 반농반목(半農半牧) 부족들은 처음에는 저항했지만 백인들이 제시한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 오늘날까지 정체성을 유지하고 공동체를 이루며 존속하고 있다.

인디언 부족의 크기는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한 정도여서 부족의 운명은 대체로 ‘부족의 눈높이’에서 결정됐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남은 부족들은 부족원로들의 입김이 센 부족이라는 점이다. 부족원로들이 혈기왕성한 젊은 전사들을 설득하여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백인을 상대로 저항해서는 멸망의 길밖에 없음을 이해시키는 데 성공한 경우다. 부족원로들이 부족의 눈높이에 맞추는 길을 택했다면 오늘날 아메리칸 인디언은 마야문명처럼 유적만 남아 있을 것이다.

대의정치는 단순히 교통, 통신의 어려움 때문에 존립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자에게 공동체의 운명을 맡긴다’는 의미가 있다. 이렇게 볼 때 국민들이 선거로 뽑은 지혜로운 자인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국민의 눈높이, 다르게 표현하면 국민여론 내지 지지율에 연연하는 것은 자신들의 의무를 반만 이행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페로니즘은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정작 국가는 거덜 났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개혁은 독일을 유럽의 중심에 우뚝 세웠지만 정작 자신은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아 선거에서 졌다. 바통을 이어받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슈뢰더 개혁효과에 편승해 롱런하고 있다.

슈뢰더 총리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않음으로써 국가발전을 이루고 자신의 정치생명을 스스로 끊은 정치적 순교자다. ‘역사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춘 것이다. 평균적 국민이 국가의 먼 미래를 위한 선택을 전적으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는 현명한 사람’으로 선출직 공직자들을 뽑았다면, 선출직 공직자들은 국민의 눈높이가 아닌 역사의 눈높이에 맞춰 정책을 끌고 나가야 한다.

국민의 눈높이와 다르다 하여 표의 심판을 받으면 달갑게 정치적 순교의 길을 택해야 한다. 특히 5년 단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할 것도 아니니 지지율에 연연할 현실적 유인도 없다. 국내외 정치경제 무대에서의 역사적 소명을 인지해 묵묵히 이행하면 된다. 선출직 공직자들이 자애로운 모습으로 곳곳에 관심을 보이고 배려하는 모습은 역사의 눈높이와 반드시 친화적인 것은 아니다. 선출직은 냉정한 관리자로서 사람이 아닌 제도를, 민족의 현재가 아닌 민족의 미래를 상대해야 한다. 불합리한 제도를 고치고 변화하는 미래를 예측해 대비하고 방책을 세우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국민의 눈높이가 국정의 잣대가 되면 지지율 관점에서 정책결정이 이루어져 포퓰리즘으로 흐를 우려가 있고 장기적, 국제적 안목을 무색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국가의 진정한 지도자가 되려면 국민의 눈높이에 충실한 노련한 정치인이 되기보다 역사의 눈높이에 맞추는 지혜로운 순교자가 돼야 한다. 그리하여 민족의 무궁한 융성을 선도하고 역사의 평가를 기다려야 한다. 국민도 당장 내 손에 쥐는 혜택의 달콤함보다 손자손녀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당장 쓴 약을 기꺼이 삼키길 호소하는 지도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최중경 객원논설위원 미국 헤리티지재단 연구위원 choijk19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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