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광화문의 염상섭 동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대한민국 수도는 부산’이라는 설정 아래 진행되는 개그코너에 이런 에피소드가 등장했다. 방송사가 신입 아나운서를 선발하면서 서울 사투리를 표준말로 바꿔보라는 문제를 낸다. ‘할아버지 오셨습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오셨습니까?’란 문제의 정답은 ‘할뱅교?’ ‘같이 왔능교?’ 서울말이 지방 사투리로 구박받는 반전(反轉)에서 웃음보가 터진다.

▷한국 문학사에는 지역의 토박이말과 구어체를 창작의 텃밭으로 삼은 대표 작가들이 여럿 있다. 소설가 이문구가 충청도 사투리의 정겨운 미감을 재현했다면, 최서해와 김남천은 각기 함경도와 평안도 방언을 갓 잡은 물고기처럼 살아 펄떡이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서울말을 잘 살린 문학작품은 어떤 것일까. 소설가 횡보 염상섭(1897∼1963)의 장편소설 ‘삼대(三代)’를 빼놓을 수 없다.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이후 지역마다 연고 문인을 찾아내 문학관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소설가 박태원과 시인 이상 등 수도 서울을 고향으로 둔 작가들은 특별시의 무관심 속에 변변한 기념관 하나 없이 홀대받고 있다. 모든 것이 중앙으로 집중되는 시스템도 문제지만 서울 태생 작가들이 역차별 받는 것도 아쉽다. ‘표본실의 청개구리’ ‘만세전’ 등 깊이와 넓이를 아우른 문학세계로 근대 문학사에 우뚝 선 횡보도 마찬가지다. 1920년 동아일보 창간 기자로 일했던 횡보는 당대의 지식인이자 언론인이었다. 그런 인물의 동상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4월 1일 광화문 교보문고 출입구 앞에 자리를 잡게 됐다.

▷벤치에 기대앉은 횡보의 전신상은 조각가 김영중의 작품이다. 1996년 ‘문학의 해’에 문화체육관광부와 교보생명이 근대문학과 서울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해 종묘광장에 세웠으나 근처 정비사업이 시작되면서 별 인연이 없는 삼청공원 약수터에 갖다놓았다. 시민들이 보다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곳에 동상을 옮겨오는 것은 문단의 오랜 숙제였다. 식민지 시대의 암담한 현실을 냉철하고 꼼꼼하게 해부한 횡보. 그 발걸음을 기억하는 거리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