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상훈]카드사의 수상한 ‘친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상훈 경제부 기자
이상훈 경제부 기자
딩동.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휴대전화에 어김없이 문자메시지가 찍힌다. ‘××카드입니다. 고객님 인근의 할인 가맹점을 안내해 드립니다.’ 이 카드사는 식사시간에 맞춰 식당 두세 곳과 커피전문점 한 곳을 추천한다. 해당 매장에 문자를 보여주면 결제금액의 5%를 할인받을 수 있다.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스팸 메시지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겪은 뒤 무심코 받아온 점심시간의 친절한 문자메시지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개인정보가 빠져나간 것에 대한 분노는 아니다. 고객정보 수집이 뒷조사 수준으로 정확하고 치밀하게 이뤄진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지난해 초까지 카드사가 기자에게 알려준 할인 가맹점은 경기 과천시 인근이었다. 기획재정부 등 정부과천청사 내 부처 취재를 맡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반부터는 서울 여의도 인근의 음식점을 친절하게 안내했다. 금융 분야 취재를 맡아 여의도 금융감독원과 금융사를 드나들기 시작한 뒤다.

카드사에 등록한 직장 주소는 서울 종로구다. 그런데 과천과 여의도라는 동선(動線)을 어떻게 파악했을까. 해답은 카드사 홈페이지에 있다. 교통카드 사용 기록을 열어보면 언제 어디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내렸는지 적혀 있다. 카드 전체 결제금액을 깔끔한 도표와 원 그래프로 보여준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콕 집어내는 스마트폰도 정보 수집에 이용된다.

이 정도의 고객 데이터 활용은 사실 카드업계에선 한물간 마케팅 기법이다. 카드사들은 2010년부터 금융당국에 “대량의 ‘빅데이터(Big data)’를 기업에 팔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퇴근 후 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기업에 팔면 그 회사는 고객에게 맞춤형 할인쿠폰을 제공할 수 있다는 식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발표한 금융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빅데이터 활성화 방안을 담았다.

고객의 동선, 소득, 소비성향, 신용등급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카드사들을 정보의 주인인 고객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카드사 홈페이지에 연 1회 올라오는 영업보고서로 간략한 회사 재무 상황은 파악할 수 있지만 나의 개인정보가 어떻게 쓰이는지는 알긴 어렵다. 스키장 이용요금을 40% 깎아준다고 홍보하면서 할인 대가로 카드사와 가맹점이 고객 정보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초 단위로 개인정보를 파악하는 카드사와 내 정보가 어떻게 쓰이는지조차 모르는 고객. 이들 간의 ‘정보 격차’를 획기적으로 좁히지 못하면 빅데이터 시대는 사생활의 자유를 박탈당한 ‘빅브러더’의 시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금융당국이 개인정보 유출 방지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카드사가 내 정보로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딩동. 또 문자가 왔다. 저녁식사 메뉴로 삼겹살 구이를 추천받았다.

이상훈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카드사#개인정보 유출#신용카드#고객정보 수집#빅데이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