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세청 경제민주화는 세무비리 ‘셀프 척결’부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30일 03시 00분


국세청이 세무조사 비리를 차단하기 위해 국장급 이상 간부와 기업의 사적(私的) 만남 금지, 고위공직자 감찰반과 세무조사감독위원회 신설을 뼈대로 하는 고강도 쇄신책을 내놓았다. 본청과 지방청의 국장급 이상 고위공직자가 매출액 기준 100대 기업이나 지주회사 임원 고문, 세무대리인과 만나 식사나 골프 접대를 받는 것이 전면 금지된다. 사적 모임 중 허용되는 것은 동창회 정도다. CJ그룹 세무조사 무마 의혹으로 전군표 전 청장 등 전현직 고위 간부가 수사를 받거나 사퇴할 정도로 국세청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자 허겁지겁 고위직에 대한 쇄신책을 마련한 것이다.

국세청장은 정부기관장 가운데 감옥에 가장 많이 갔다. 청장 자리를 거쳐 간 19명 중 8명이 검찰 수사를 받았다. 국세청장에 대한 수사가 가능해진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 따지면 15명 가운데 반이 넘는다. 고위 간부는 뇌물에 오염돼 있으면서 자리만 높다고 일선 세무공무원들만 깨끗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나. 최근 서울국세청의 한 세무조사팀은 팀 전체가 조사 대상 회사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받은 돈을 팀원들이 똑같이 나누고 팀장에게는 더 줬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에서 국세청은 검찰, 경찰과 함께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정부는 대선 복지공약에 필요한 재원 135조 원 중 27조 원을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더 걷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세청에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고액 현금거래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까지 줬다. 권한이 커질수록 세무공무원의 윤리의식도 더 높아져야 한다. 납세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세금도 제대로 못 걷으면서 국세청의 금융정보 접근에 대해 반발이 커지고, 납세자의 불만만 높아질 것이다.

역대 정권들은 정권 초마다 세무 비리를 끊겠다고 공언했고, 국세청도 큰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작 달라진 건 없다. 자정(自淨)의 한계다. 최근 CJ 사건을 계기로 국회에서 국세청장 2년 임기제, 국세청장 후보자 추천위원회 구성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국세청법’ 제정을 논의하고 있다. 여야의 대립으로 진전이 없으나 이런 움직임은 국세청을 외부에서 개혁하겠다는 뜻이다. 세무비리 척결이야말로 ‘국세청발(發) 경제민주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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