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베이징과 민통선에서 본 북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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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한 중국 태도는 바꾸기 위해 바뀌고 있고
북한에 애를 먹는 한국도 바뀌지 않은 듯 바뀌었는데
변화의 목표인 북한만이 오히려 홀로 ‘존엄’하다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중국은 북한에 대한 낯빛을 바꿨는가.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정부, 학계, 언론은 이 화두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 때까지도 북한을 두둔하던 중국이 유독 3차 핵실험 이후에는 북한에 매를 드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 발단이다. 이 논쟁의 저변에는 북한을 바꾸려면 중국부터 변해야 한다는 현실인식이 깔려 있다.

누구보다 중국이 바뀌었다는 걸 강조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의 성과를 거론하면서 “실제 시진핑 주석이나 리커창 총리나 이런 분들 만나서 핵문제나 이런 것 나올 때 그분들 생각이 단호했다. 절대 핵은 안 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예로 든 것이 북한 핵실험 때문에 압록강 수질이 악화됐다고 했다는 리 총리의 발언이다. 이 발언을 공개한 데 대해 중국 정부는 상당히 강하게 어필했다는 후문이다.

정상회담이 끝나고 한 달쯤 지난 지금, 당사자인 중국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정답까지는 아니더라도 분위기는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5차 한중 고위언론인 포럼에서다. 중국 국무원신문판공실과 한국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주최하고, 21세기한중교류협회(회장 김한규)가 주관한 이 포럼에는 한국과 중국의 주요 언론사 간부 40여 명이 참가했다. 한국 언론사 간부들은 리자오싱 전 외교부장, 류치바오 공산당 선전부장 겸 정치국원도 따로 만나 포럼에서 오간 대화를 다른 각도에서 정리할 수 있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3시3비(三是三非)라는 느낌을 받았다. 세 개는 그렇고 세 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인데,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그렇고 그렇지 않다는 태도가 공존하는 게 특징이다.

중국은 첫째, 북한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으면서도 겉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둘째, 북한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북한만의 책임은 아니라고 한다. 셋째, 북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가 자국이란 걸 알면서도 그 힘을 전부 쓸 수는 없다고 한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첫 번째 시각은 ‘원칙’과 ‘방법’의 차이로 설명한다. 한반도 비핵화 실현 및 평화와 안정,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중국의 ‘한반도 3대 원칙’은 전혀 변한 게 없으며 이를 실현하는 ‘방법’이 약간 달라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 공동책임론이다.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 즉 체제 인정이나 평화협정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만이 줄 수 있는데 미국이 문제 해결에 소홀하다는 주장이다. 세 번째는 정치력도 필요하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중국은 북한 문제도 예외 없이 국익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설명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중국의 대북관이 바뀌었다며 정상회담 성과에 분칠을 하거나, 바뀐 게 전혀 없다며 모처럼의 좋은 분위기에 먹칠을 하려는 주장들은 의미가 없다. 중국의 변화 조짐은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중국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복안적(複眼的) 대처가 필요하다. 중국이 북한을 보며 주변을 살피듯, 우리도 중국을 보며 주변까지 살펴야 한다. 이는 중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다.

중국의 이런 전략적 태도를 보며 지난달 27일 캠프 그리브스에서 열린 평화포럼을 떠올린다. 캠프 그리브스는 비무장지대(DMZ)에서 불과 2km 남쪽에 있는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 최북단 주한 미군기지였다. 중국과는 다른 시각에서, 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바라보던 창이었던 셈이다. 2007년 한국이 넘겨받아 안보체험관으로 바꾸면서 처음으로 연 행사가 대학생 100명이 참석한 이번 평화포럼이었다.

시간과 장소가 어떤 웅변보다도 설득력이 있다는 걸 이 포럼은 증명했다. 정전 60주년 바로 그날에, 지척에 북한 땅을 둔 곳에서 젊은이들은 전쟁과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했다. 거기에 이념과 갈등, 이해와 타산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식후 행사에서 들은 가곡 ‘비목’과 ‘그리운 금강산’의 가사는 무대에서 내려와 곧바로 내 옆에 앉았다. 오로지 동족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베이징에서 본 북한은 여전히 중국 국익에 따라 관리해야 할 국가였다. 휴전선 가까이에서 본 북한은 어느새 국익만으로는 내칠 수 없는 나라로 바뀌어 있었다. 그 틈새에서 한국은 고민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시비(是非)를 둘러싸고 중국은 작시금비(昨是今非), 어제는 옳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아닌 것 같아 방향을 틀려 하고, 한국은 시야비야(是也非也),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워 내부 갈등에 시달리고, 북한은 자시지벽(自是之癖), 여전히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못된 버릇에 빠져 있다. 그런데도 문제를 풀 열쇠는 예나 지금이나 북한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게 불행이다.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ksshim@donga.com
#북한#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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