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영식]이집트의 미래 ‘인 듀 코스’에 달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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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국제부 기자
김영식 국제부 기자
고등학교 재학 시절 양복 오른쪽 주머니에 영자 신문을 항상 넣고 다니시던 은사님이 계셨다. 어느 날 ‘역사적인 한 구절’을 말씀하셨다.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인 듀 코스’는 ‘적절한 절차를 거쳐서’라는 뜻이다. 그렇게 한국이 자유와 독립을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3년 11월 27일 조인되고 그 다음 달 1일 발표된 카이로 선언의 일부였다. 당시 연합국 지도자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장제스(蔣介石) 중국 총통은 이집트 카이로에 모였다. 이들은 일본 패전 처리에 대한 기본 방침을 정했다. 특별조항에선 한국을 자유 독립국가로 만든다고 명시했다.

올해 11월로 카이로 협정 조인 70주년을 맞이한다. 12일 둘러본 카이로 외곽 기자 지역의 ‘메나 하우스’가 바로 그 서명 장소다. 호텔 관계자에게 한국에서 찾아온 기자라고 소개한 뒤 역사적인 현장을 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서명이 이뤄진 325호실은 처칠 총리가 묵었던 방. ‘처칠 스위트’라고 명명된 객실 입구와 내부 벽에는 당시의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처칠의 사진 아래에 놓인 책상에 앉으니 당시 서명에 사용된 잉크의 냄새가 느껴지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 대표가 참여하지도 않은 회의 협정문에 한국의 독립이 포함된 것은 특별한 일이다. 외교관들은 잘 안다. 참여하지 않은 회의의 합의문에 한국 관련 항목을 한 줄 넣는 것이 지금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안중근, 윤봉길 의사의 의거와 김구 선생의 부단한 노력이 장 총통을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이집트가 ‘아랍의 봄’ 혁명의 길고 긴 진통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경제를 외면하고 이슬람 세력 강화에 매달린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의 실정으로 이집트는 둘로 나뉘었다. 빵 문제로 촉발된 이집트의 제2혁명이지만 이면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변화에 대한 젊은층의 욕구, 종교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거리로 나선 두 세력은 절차적 정당성과 시민의 뜻을 앞세우며 충돌해 봉합하기 어려운 감정의 골을 만들고 있다.

해법 마련은 어쩌면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정치권이 당파적 이익을 버리고 머리를 맞대 조속한 권력의 민간 이양을 포함한 이집트 미래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것. 그래야만 2011년 시작된 아랍의 봄 혁명을 완성하고 길거리 시위와 총성을 잠재울 수 있다. 인 듀 코스, 이집트가 조속히 안정을 찾아 발전의 길로 나서길 기대한다. ―카이로에서

김영식 국제부 기자 spear@donga.com
#이집트#인 듀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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