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인사 청탁하면 망신 주겠다”는 이순우의 약속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2일 03시 00분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인사 청탁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계속한다면 임직원 다 있는 데서 망신을 주거나 강등 조치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우리은행장 시절에도 서랍을 열면 정치인이나 감독기관 등을 타고 날아온 청탁 서류가 수북했지만 이를 반영한 적은 없다”며 “청탁 거절로 입을 수 있는 보복은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부행장을 계열사 사장으로 보내는 낙하산 인사에 대해서도 “전문성, 열정과 에너지를 바탕으로 한 영업력, 민영화 적합성의 세 가지 원칙만 보겠다”고 단언했다.

금융계의 청탁 풍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은행 본부장급 정도가 되면 “바깥을 먼저 본다”고 한다. 자신의 성과와 역량을 입증하는 것보다 외부 힘을 동원하는 쪽이 승진에 유리하다는 뜻이다. 이런 풍토는 인사 질서나 조직 기강만 무너뜨리는 게 아니다. 시장에서의 경쟁력도 망가뜨린다. 한국의 수출 산업이 선진국을 넘보고 있는 반면에 금융산업 경쟁력은 개도국 수준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이유를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주인 없는 은행일수록 외부 줄 대기가 더 극성이다. 행장 인사를 청와대 정치권 금융위원회 등 권력기관이 좌지우지하다 보니 이들의 도움을 받아 행장이 된 후에는 청탁을 거절하기 어렵다. 행장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소위 ‘끗발 있는’ 기관과 인사도 많다. 여러 은행이 합병한 금융지주회사에서는 출신 은행끼리 파벌을 만들어 밀어주고 끌어주기도 한다. 회장과 은행장부터 인사 청탁을 배제하고 인재를 적소에 배치하는 게 금융개혁의 첫걸음이다. 그래도 청탁을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불이익을 줘야 한다.

행원으로 시작해 처음 금융지주 최고위직에 오른 이 회장은 “그동안 정적이고 보수적인 공기업 문화가 오랜 시간 조직에 토착화되면서 그룹의 경쟁력이 땅에 떨어졌고, 시장의 평가는 냉혹하기만 하다”, “지난 정부에서 우리금융 민영화 실패는 우리금융이 사실상 반대 목소리를 냈던 것 때문이다” 등의 발언도 했다. 이런 문제의식이 우리금융지주뿐 아니라 한국 금융계 전체에 확산돼 쇄신의 씨앗이 되길 기대한다.
#이순우#우리금융지주 회장#인사 청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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