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종대]신형대국관계론, 우리에겐 기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하종대 국제부장
하종대 국제부장
최근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가 화두가 되고 있다. 언뜻 보면 대국관계라는 일반용어에 ‘새로운’이라는 수식어만 붙인 쉬운 말 같지만 우리는 물론이고 미국인들에게도 생소했던 모양이다. 미국 언론은 ‘6자 한자’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몰라 ‘New Model of Great Power Relationship’ ‘New Type of Big Power Relationship’ ‘New Model of Major Country Relationship’ 등 다양한 형태로 보도했다.

이를 사전에 감지라도 한 듯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신형대국관계를 설명하는 데 무려 1시간 가까이 썼다. 기자회견에서는 이 질문 하나만 받았다. 중국이 미국과 신형대국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형대국관계의 핵심은 미중 양국이 대화와 협력을 통해 상호 공영하자는 얘기다. 중국이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급부상 과정에서 행여 있을지도 모르는 미국과의 패권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다. 아직은 ‘근육의 힘’이 미국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다. 중국은 신흥국과 기존 패권국의 무력충돌을 통한 패권 전이(轉移) 방식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은 양국이 과거의 역사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거로 국가 간 상호의존성의 심화를 들고 있다. 중국은 매년 미국과의 무역에서 3000억 달러 안팎의 흑자를 내고 있다. 이렇게 번 돈으로 중국은 미국 국채를 1조 달러 이상 사줬다. 미국 국채의 22.3%에 이른다. 달러를 찍어 적자를 메우는 미국 경제의 최대 협조자가 중국인 셈이다. 신흥국과 기존 패권국이 상호 협력을 통해 적대국이 아니라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중국의 주장을 미국이 패권을 향한 중국의 변장술로 볼지 말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대목은 이런 중국의 신형대국관계 주창이 20년 이상 북핵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 온 한국으로서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이다. 중국이 세계 패권국인 미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상징 케이스로 북핵 문제를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두 지도자가 “북한의 핵개발도, 핵보유국 지위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1993년 3월 시작된 북핵 문제가 20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데는 중국의 모호한 태도가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의 비핵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3원칙을 제시해왔다. 문제는 이 3원칙은 북한을 포함한 관련 당사국들이 비핵화라는 목표에 동의하고 진지하게 협상에 임할 때만 문제 해결이 가능한 방식이라는 점이다. 6자회담 당사국 중 단 한 나라라도, 특히 북한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나아가 북한이 핵개발을 완성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만 줄 뿐이다.

중국이 최근 3원칙 가운데 ‘한반도의 비핵화’를 강조하고 유엔의 제재 결의도 적극 이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은 분명한 변화의 징조다. 최근 서울에서 만난 중국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3원칙 가운데 강조 순서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로 바뀌었다는데 사실이냐”라는 질문에 의미심장한 답변을 했다. 그는 “어느 항목도 빠질 수 없다”고 전제한 뒤 “(북한이) 집(중국) 앞에서 난장판을 치거나 핵무기를 휘두르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베이징(北京)에서 특파원을 지낸 기자는 중국의 고위 관리가 이런 용어를 써 가며 북핵 불용을 강조하는 걸 본 적이 없다.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다. 우리로서는 이번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물꼬를 트는 천재일우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중국이 미국만큼, 나아가 미국보다 더 강해지면 ‘신형대국관계’를 더이상 내세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종대 국제부장 orion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