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기종]경제민주화와 일감 몰아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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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정책은 독과점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다른 기업들을 배제하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즉, 경쟁정책은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시장에 참여해서 경쟁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의미에서 경제민주화의 핵심을 이루는 정책이다.

그러나 대규모 기업집단들이 개개 시장을 넘어서 국민경제 전체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하에서는 특정 시장에서의 개별 기업의 행태(카르텔, 기업결합 등)에 초점을 맞추는 전통적인 경쟁정책만으로는 독립기업 내지 중소기업들에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보장하기 어렵다. 그래서 공정거래법은 대규모 기업집단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들을 규정하는 한편, 불공정거래 행위의 일종으로 기업집단 계열사 간의 부당지원 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이 제도들은 전통적인 경쟁정책의 틀을 벗어나 기업의 집단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대규모 기업집단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우리나라의 독특한 환경 속에서 독립기업 및 중소기업들을 위한 공정한 경쟁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해 왔다.

그러나 현행 공정거래법상의 부당지원행위 규제로는 계열사 간 거래의 폐해를 규제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으며, 특히 최근 심화되고 있는 대규모 기업집단 계열사들 간의 일감 몰아주기나 총수 일가에 의한 사업기회 유용 등을 규제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부당지원 행위가 불공정거래 행위의 일종으로 규정되어 있어 특정 시장에서 공정거래가 저해되었음을 입증하여야 규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개별 시장을 넘어서서 대규모 기업집단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는 일감 몰아주기나 사업기회 유용을 규제하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계열사들로부터 대량의 일감을 수주함으로써 손쉽게 시장을 장악하고 독립기업 내지 중소기업이 설 땅을 빼앗아버리는 일감 몰아주기는 모든 경제주체에게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는 경제민주화의 핵심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계열사들 간의 일감 몰아주기나 총수 일가에 의한 사업기회 유용을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에 ‘경제력 집중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거래’를 금지하는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다만, 계열사 간 거래의 부당성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입증하도록 하고, 수직계열화된 계열회사 간의 거래라든가 효율 증진, 보안 유지를 위한 계열사 간 거래 등이 정당화 사유가 될 수 있음을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이에 관한 재계의 우려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혹자는 일감 몰아주기나 사업기회 유용을 회사법, 세법, 형법 등으로 충분히 규제할 수 있다고 하나, 이들 법률은 규제의 목적과 방법 등이 공정거래법과 달라 경제력 집중의 억제를 통한 공정한 경쟁의 기반 조성을 달성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없다.

이기종 숙명여대 법과대학 교수
#경제민주화#경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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