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새 공정위원장, 로펌에서 ‘방패’하다 ‘창’ 잘 쓰겠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5일 03시 00분


새 공정거래위원장에 한만수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내정됐다. 한 내정자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주로 로펌에서 근무해온 변호사 출신이다. 법조계에서는 공정거래 분야보다는 조세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근무했던 김앤장과 율촌은 특히 공정거래와 관련된 소송을 많이 맡고 있는 로펌이다. 로펌에 공정거래 문제로 찾아오는 고객은 거의 대기업이다. 로펌에서 기업 입장을 대변했던 그가 하루아침에 경제 분야의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장(首長)으로 변신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한 내정자는 1984년부터 23년 동안 로펌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이화여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변호사와 교수로만 일해 온 그는 판검사나 관료 출신이 아니어서 로펌 근무 당시 법조계나 정부부처로부터 ‘전관예우’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공직에서 로펌으로 왔다가 다시 공직으로 돌아가는 ‘U턴 인사’ 사례도 아니다. 오히려 로펌에서 일하면서 공정거래 관련 업무를 맡았다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공정위의 횡포와 약점을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로펌의 공정거래 업무는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와 부당내부 거래와 관련된 소송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한 내정자의 로펌 경력은 공정거래위원장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공정위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는 경제민주화의 핵심 조직이다. 과거 몸담았던 로펌으로부터 업무 판단에 영향을 받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한 내정자는 박 대통령의 대선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의 발기인으로 경제민주화 팀의 주축이었다. 그는 공정거래 분야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법무법인에서 근무할 때 공정거래 분야 소송을 많이 다뤘으며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도 경제민주화 공약 수립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그를 발탁한 배경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측근 인사라는 인상이 짙다.

그가 로펌에서 기업을 방어하는 ‘방패’ 역할을 하다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대기업의 불법 행위를 처벌하는 ‘창’의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앤장과 율촌 같은 로펌의 영향력이 워낙 커서 한 내정자의 임명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냈던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와 김동수 씨는 공정거래 업무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내정자는 전문성에서도 큰 점수를 얻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인사청문 과정에서 한 내정자의 적격 여부를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장#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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