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봉균]소신이 있어야 책임장관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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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균 객원논설위원·건전재정포럼 대표
강봉균 객원논설위원·건전재정포럼 대표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 나갈 박근혜 정부의 첫 번째 내각과 대통령비서실 진용이 짜였다.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지만 총리를 비롯한 17개 부처 장관은 정치적 안배보다는 전문성과 능력 위주로 발탁했다. 새 정부가 그만큼 어렵고 촌각을 다투는 난제를 안고 있다는 박근혜 당선인의 생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후보자들의 공직 경로를 면밀히 추적해서 사심 없이 나라를 위해 일할 유능한 인재인지를 따지면 될 것이다. 도덕성 검증은 성직자 수준의 무결점을 요구하기보다 사회 통념에 맞는 잣대로 국민이 수긍할 만한 인물인지 가리면 된다. 17개 부처 장관들은 한국 관료사회의 긍정적 유산은 최대한 살리고 부정적 유산은 강력히 제어하면서 관료조직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한국의 관료조직은 지난 반세기 동안 정부 주도의 산업화를 성공시킨 주역이었다. 선진국을 따라잡는 추격형 성장전략의 요체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인기영합적 타협이나 적당주의를 용납하지 않는 DNA를 갖고 있다. 이것은 정치민주화 시대에 예외 없이 나타나는 포퓰리즘에는 강한 DNA이지만 민간부문의 다양성을 살려 나가야 하는 창조경제 시대에는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박 당선인은 대·중소기업 간, 지역 간, 빈부 간, 근로계층 간 차별이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을 확대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중시한다. 관료조직이 이런 약속들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뒷받침하느냐가 신임 장관들의 기본적 책무가 될 것이다.

‘국민을 위하는 길이 대통령을 위한 길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국민에게 책임지는 자세로 일하라는 것이 박 당선인이 강조하는 책임장관제다. 따라서 대통령의 뜻은 받들되,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수동적 자세를 버리고 실현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그런 능동적 자세가 없으면 ‘희망의 새 시대’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정치민주화 시대가 되면서 임명직은 선출직보다 스스로를 낮추려는 경향이 심화하고 있다. 그러나 선출된 대통령이 임명한 책임장관이라는 긍지를 갖고 정치권과 협력은 하되 휘둘리지는 말아야 한다.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시민과 소통하려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집단이기주의에 끌려다니지 않는 용기와 소신이 없으면 책임장관이 될 수 없다.

부처 조직을 관리하는 방식이 ‘나를 따르라’는 개발연대식 리더십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했다. 어떻게 하라고 일일이 지시하지 말고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비전만 제시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는 구성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관이 유능한 장관이다. 학연, 지연, 친분 여하에 따라 내 편과 네 편을 가르지 말고 통합에너지를 만들어가는 ‘멀티플라이어(multiplier)’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경제 관련 부처들은 자기 부처에서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보다 다른 부처와 협의해야만 해결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흔히 부처 구성원은 부처이기주의에 용감한 장관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경향이 있다. 그 부처가 대변하는 이익단체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하부조직에 휘둘리는 장관은 작은 일로는 박수를 받을지 모르지만 결국 큰 정책에서 실패해 대통령의 신임을 잃게 된다.

공부를 많이 한 전문가 출신 장관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도 있다. 좌고우면하다가 선택할 때를 놓치는 것이다. 토론은 충분히 하되 결단은 신속해야 한다. 모든 정책에는 장단점이 있고 부작용도 있다. 멀리 내다보고 국민 전체에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결정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나쁜 결정보다 더 나쁜 것은 늦은 결정이다.

박 당선인의 민생경제 대통령 약속은 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11개 부처 장관들이 짊어져야 한다. 바라건대 경제 각료들은 성장을 위한 경쟁력 강화와 분배 개선을 위한 복지확대 간 균형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주기 바란다.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면 건전재정 바탕 위에서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 또 경제민주화의 목표를 중소상공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공정경쟁에 두되 대기업의 국제경쟁력도 약화시키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국민행복시대를 열어 나가는 데 복지지출 확대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 법치가 확립되지 않아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만큼 힘없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같은 일을 하면서 정규직의 60% 대우밖에 못 받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해소도 복지확대 못지않게 중요하다. 다만 경제적 약자이기 때문에 무조건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는 복지논리는 열심히 일하는 사회 분위기를 흐려 놓을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저소득층 자녀들의 교육기회를 보장해 희망의 사다리를 복원하는 것도 사회통합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

통일이 될 때까지 사회적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숙명이다. 국민이 행복한 희망의 새 시대는 소신 있게 일하는 책임장관들에게 달려 있다. 경제적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청렴성과 정치권력에 아첨하지 않는 배짱이 있으면 부하직원들은 따르게 마련이다. 아무쪼록 박 당선인의 전문가 중용 철학이 성공하도록 책임장관들은 선비정신을 발휘해주기 바란다.

강봉균 객원논설위원·건전재정포럼 대표 esso@kif.re.kr
#책임장관#인사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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