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안데르스 칼손]서양사람이 본 ‘홍경래의 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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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스 칼손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 한국학과 교수
안데르스 칼손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 한국학과 교수
한국사를 연구하는 서양학자로서 한국인들에게 왜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더욱이 한국 사람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 1812년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동양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1970, 80년대 스웨덴에서 자라면서 동양문화를 경험하기는 쉽지 않았다. 동양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으로 1986년 고등학교 동창 한 명과 중국 여행을 떠났다. 3개월 일정으로 티베트와 네팔, 인도까지 계획했던 여행은 친구가 폐렴에 걸리는 바람에 2개월로 중단했지만 지금도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세 나라 중에서 한국이 가장 흥미로운 나라로 다가왔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두 달 동안 한국에 다녀왔지만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국에 좀 더 오래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한국으로 다시 돌아갔고 한국외국어대에서 스웨덴어를 가르치면서 2년 반 동안 서울에서 살았다. 이 2년 반 동안의 시간은 내가 한국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됐고, 박사 과정으로 한국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한 시간이었다.

석사 과정에서 나의 가장 큰 관심은 19세기 후반 한국사였고, 이 시기 개혁사상과 개혁안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썼다. 그리고 19세기 후반 한국 역사를 좀 더 심도 있게 이해하려면 19세기 전반부터의 사건과 변화를 포함하는 폭 넓은 접근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19세기를 민란의 시기라고 하는데 봉기, 민란, 농민전쟁과 같은 일들은 그 시대 사회적인 변화, 민심과 정치적인 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그래서 일단 박사논문 주제를 19세기 민란으로 정했다. 박사 공부는 스웨덴 스톡홀름대에서 했는데, 당시 런던대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가 홍경래의 난을 박사 논문 주제로 추천했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홍경래의 난이 당시 중요한 사회, 경제, 정치적인 상황과 밀접하고 복잡한 연관을 맺고 있음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시장경제, 수공업과 광업의 발달, 적극적으로 지방경제를 장악하면서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국가, 이앙법 확대로 인한 생산력 증가, 동시에 이앙법의 부작용으로 잦아지는 흉년과 기근 등이 그것이다.

그동안 많은 연구에서 19세기의 조선역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전반적이었는데, 홍경래의 난을 직접 연구한 내가 느낀 것은 19세기 조선시대를 부정적으로만은 볼 수 없다는 점이다. 19세기 조선이 사회, 경제적인 위기를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시기의 모든 사건과 상황을 조선의 종말로 가는 변화로 인식하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경래의 난은 중앙권력과 지방사회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관계를 잘 보여준다. 농민, 상인, 향리, 군인, 양반 등등 조선사회 각계각층이 이 난에 관여됐는데 협조적이든 갈등적이든 사회 각계각층이 이해관계에 얽혀 서로 도전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역사 발전의 추진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홍경래의 난은 서구세력이 조선에 도착하기 이전의 조선사회 발전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 사건을 연구함으로써 19세기 한국역사를 보다 폭 넓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안데르스 칼손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 한국학과 교수
#홍경래의 난#조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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