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벌 족쇄 채우기 입법’ 대선 뒤 理性的 논의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8일 03시 00분


새누리당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겸 경제민주화 단장은 16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 관련) 항목을 골라 2개 이상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의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은 앞서 “여야 합의만 된다면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20개도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도 대통령직속 재벌개혁위원회 설치와 계열분리명령제 등 강도 높은 대기업 개혁카드를 꺼냈다. 이러다간 이번 정기국회가 경제민주화와 대기업 때리기의 입법(立法) 경연장이 될 판이다.

19대 국회가 5월 말 문을 연 뒤 3개월간 여야가 발의한 기업 관련 법률안 10건 가운데 8건이 규제를 강화한 내용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대선후보들 사이에서 ‘재벌 족쇄 채우기’ 경쟁이 벌어지고 각 정당들이 서로 차별화된 정책을 의식하다 보면 논의 자체가 강경론으로 치닫기 쉽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대기업 때리기를 노린 졸속 입법이 양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법들이 총체적인 국민경제, 투자 증대와 일자리 창출, 시장 활성화, 국민 삶의 향상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냉철한 검증이 필요하다. 국회가 재벌 규제 입법에 열을 올리게 되면 시장의 실패나 정부의 실패보다 더 심각한 ‘법의 실패’를 자초할 수 있다.

기업이 시장에서 적자를 내고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국내외 경제 환경이 호전될 조짐이 별로 없는 형편에 대기업은 그나마 우리 경제를 상대적으로 건강하게 지탱하고 있다. 이들의 손발을 묶고 괴롭혀 해외로 달아나고 싶도록 몰아붙이는 것이 과연 경제민주화의 근본 취지에 부합하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회원사로 둔 서울상공회의소 회장단도 어제 대선후보들의 경제민주화 논의와 관련해 “시기와 내용을 좀 더 신중히 검토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천공항 지분 매각 등 주요 국책사업을 차기 정부로 넘기라”고 주장하는 정치권이 기업경영과 시장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경제민주화 법안을 서둘러 처리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단 졸속으로 만들어진 법을 나중에 바로잡기 위해서는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여야가 정치적 목적으로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강행하면 법 자체가 과잉과 편향으로 흐를 수 있다. 연말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새로운 권력이 경제민주화의 밑그림을 그리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순리(順理)다. 새 정부가 대기업 개혁의 방향과 정책의 부작용, 세계경제 동향까지 치밀하게 짚어보면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게 옳다.
#대선#재벌#경제민주화#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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