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손태규]네거티브 선거가 먹히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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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손태규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지난해 12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국민이) 존경할 만한 건설적 선거운동을 하겠다.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하는 참모는 쫓아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겨우 28일 만에 자신의 약속을 뒤집으며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게 전면 공격을 선언했다.

한때 선두에 나서기도 했으나 결국 롬니에게 패한 그는 “더 빠르게, 더 적극적으로 반격했어야 했다”며 진작 네거티브 운동을 하지 않았음을 후회했다. 언론은 네거티브 전략이 훌륭한 선거운동임을 깅리치가 인정했다고 비꼬았다. 깅리치 역시 네거티브 선거운동이 유용한 무기임을 모를 리 없었겠지만, 그것이 늘 비난받는 대상인 탓에 하루빨리 활용하라는 지지자들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그런 이성적 판단 때문에 그는 현실 정치 감각이 모자란다는 비판을 감수해야만 하는 패배자가 되었다.

중상, 비방, 인신공격을 활용하는 네거티브 전략은 대선후보에겐 치명적 유혹이다. 오죽하면 ‘정치의 마약’이라 불리겠는가.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비판하지 않는 후보는 없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너도 나도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 네거티브 전략이 가장 효과가 큰 선거운동이며 승리의 방식이라고 믿는다. 국민이 대통령을 뽑는 것은 후보자의 강점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약점과 문제가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후보자들은 깅리치처럼 네거티브 선거운동의 힘을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번 美 대선, 최악의 네거티브전

이미 이번 미국 대선은 역사상 가장 극심한 네거티브 공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웨슬리언대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6월부터 9월까지 넉 달간 방영된 텔레비전 선거광고의 60%가 인신공격과 비방 등 부정적 내용이었다. 2000년 같은 기간의 18%, 2008년 40%보다 훨씬 늘어난 것이다. 9월 3주 동안 건전한 정책 홍보는 8%에도 미치지 못했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미국의 DNA 일부’라는 말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어느 대통령이든 재선 당선 전략의 출발은 재임 기간의 기록과 업적의 부각이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재정적자와 실업률 증가 등으로 별로 내세울 업적이 없다. 이런 상황은 오바마의 재선 전략이 롬니 개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켜 반사 이익을 노리는 것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에 맞서 롬니는 오바마의 실정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 나서는 게 당연하다. 이번 대선이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가 될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가 예상한 이유였다.

한국 대선은 미국과 비교해 더 극렬한 네거티브 선거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고질적인 정치 구조의 문제가 있는 데다 제대로 된 정치인 충원 과정을 거치지 않은 후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선거에서는 단임제라는 정치구조 때문에 현직 대통령이 후보가 될 수 없다. 정책 업적과 기록에 관한 공방을 벌일 후보가 없는 셈이다.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정책을 서로 따지는 것은 공허하기 쉽다. 대선후보들이 각자 내세울 업적이 없는 만큼 상대에게 부정의 이미지를 덧칠하는 것이 절실해진다. 후보들이 네거티브 선거전략에 사활을 걸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이다.

더욱이 이번 선거의 유력 후보 3명 가운데 박근혜 후보는 늘 개인의 과거 문제로 야권의 표적이 되어 왔으며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는 정치이력이 별로 없는 신인이다. 문 후보는 총선 출마를 한 번 했을 뿐이며 안 후보는 그나마도 경험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정치인 충원 과정을 거쳤다면 이미 걸러졌을 그들의 과거 경력과 자질들이 한꺼번에 검증될 것이다. 그럴 경우 상당 부분의 검증은 비방과 인신공격으로 변질될 개연성이 크다.

비방전 불가피한 한국 정치

현대 대통령 선거가 네거티브로 흐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요인은 디지털 미디어의 발전이다. 유용한 선거도구가 된 사이버 공간의 많은 부분이 안타깝게도 네거티브 전략에 사용되고 있다. 즉흥적이고 부주의하기 쉬운 소셜미디어 소통은 비방과 인신공격을 위한 교묘한 수단이 되기 쉽다. 치고 빠지는 네거티브 캠페인에 안성맞춤일 것이다.

‘유권자는 증오하나, 언론은 사랑하며, 후보들에게는 필요한 것’이 네거티브 선거운동이라고 한다. 언론은 후보들끼리의 싸움에서 흥미로운 기삿거리를 얻을 수 있기에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유권자들도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네거티브 선거운동이다. 유권자들은 말로는 정책 대결을 요구한다고 하지만 심각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의 나열보다 후보들의 속내를 더 알기를 원한다. 유권자의 이중성이다.

선거 때마다 네거티브 공방을 개탄하나 그것을 사랑하는 유권자가 있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 애당초 마약 같은 유혹을 뿌리치는 용기 있는 후보를 바라는 것은 난망하다. 결론은 깨어 있는 국민의 결단이다. 진흙탕 선거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네거티브 전략에 집착하는 후보들을 응징하는 그들의 표뿐이다.

손태규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선거#대선#네거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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