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지금 학부모 이상의 세대라면 깍두기라는 단어에서 여러 가지 뜻을 떠올릴 것이다. 무를 네모나게 썰어 고춧가루에 버무린 김치가 우선이다. 언제부턴가 조직폭력배를 일컫는 은어로도 쓰인다.
어릴 적 편을 갈라 놀 때 사람이 홀수이면 양쪽 편에서 다 뛰는 친구를 가리키는 단어도 깍두기였다. 깍두기는 그 놀이를 제일 잘하거나, 반대로 가장 못하는 아이에게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아이가 어느 한 편에 속하면 승패가 기울기 때문이다. 깍두기는 게임을 공정하게 만드는 도구인 동시에 잘났거나 못났거나 한데 어울릴 수 있게 해 주는 묘책이었다.
얼마 전 해거름에 동네 놀이터를 지나가다 하나 둘 모여드는 초등학생들을 봤다. 학원 가방을 두세 개씩 든 아이들은 어두컴컴해져야 비로소 놀이터에서 한숨 돌리는 모양이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가방을 벗어 던지고 뛰어놀기 시작했다. 놀이터에서 초등학생을 본 게 오랜만이라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노는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뛰노는 아이들은 남자 셋, 여자 넷. 대화로 미루어 초등학교 4, 5학년인 아이들은 철봉 옆에 선을 그어 놓고 멀리뛰기 내기를 했다. 다방구나 오징어(어원이나 표준어는 알 길이 없다)처럼 내 나름으론 수준 높은 놀이를 하며 자란 내겐 어쩐지 좀 심심해 보였다. 더구나 두 편으로 나눠 겨루던 아이들은 한 명씩 번갈아 가며 내기에서 빠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키가 제일 작은 남자아이가 쫓겨났다. 같은 편 아이들이 자꾸 내기에서 지니까 그 아이를 탓하며 몰아낸 것이었다.
무안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아이가 안쓰러워 내가 아이들 틈에 끼었다. “얘들아. 너희 깍두기 없니? 얘가 깍두기하면 되겠는데”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일제히 “그게 뭐예요?”라고 되물었다.
아니, 깍두기를 모르다니….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헐!’이었다. 그 뒤로 놀이터나 공원에서 아이들을 보면 종종 물어봤다. 혹시 깍두기를 아느냐고. 열에 일곱은 설렁탕 김치라고 대답했다. 동네 친구를 만들기 위해 학원에 간다고 할 정도로 놀이 문화가 없는 요즘 아이들은 깍두기를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줄넘기 과외는 옛말이요, 요즘은 자녀들에게 신체 놀이를 가르치기 위해 엄마들이 성적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놀이 그룹을 짜는 세상이다. 서울 강남의 한 신체놀이 교습소는 명문대 체육학과 출신들이 고무줄놀이와 땅따먹기를 가르쳐 준단다. 어린 아이들에게 영어로 신체 놀이를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도 인기다.
아이들은 여럿이 함께 하는 신체 놀이를 통해 몸을 튼튼하게 하기도 하지만 또래 사이의 질서를 익힌다. 잘하는 아이, 못하는 아이가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놀이의 미덕이다.
어린이집 교사인 친구는 요즘 아이들이 아이패드나 블록, 영재교육 교구를 손에 쥐면 웬만한 어른보다 더 능수능란하게 논다고 전했다. 하지만 맨손이 되면 바로 옆에 친구가 있어도 멍하게 있는 아이가 많다고 한다. 몸으로 부딪히며 재미를 찾아내는 능력이 퇴화하는 것 아닌가 싶다.
놀이 능력의 퇴화와 더불어 요즘 아이들 사이에 깍두기가 실종된 것은 더욱 안타깝다. 좀 뒤져서 어느 편도 원치 않는 아이라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깍두기의 미덕이 살아 있다면 왕따도 좀 수그러들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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