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롤러버스터와 핫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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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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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3주 전 한 여행사가 방한 외국인 250명에게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거기엔 ‘한국 관광 중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모습은?’이란 질문도 있었는데 다섯 개 ‘사례’를 사진과 그림으로 보여주었다. 거칠게 운행하는 버스, 환자복 차림으로 거리에 나선 사람, 핫팬츠로 다리를 드러낸 여성, 선거 유세용 트럭 앞에서 노래를 틀고 춤추는 사람, 소·돼지가 웃는 얼굴로 자기 고기를 들고 있는 메뉴판 등이었다.

이 다섯 항목은 이미 외국인 눈에 ‘이상한 모습’으로 비친 것으로 그 출처는 한 블로거의 사이트였다. 외국인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쓴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설문조사 결과 최악은 ‘난폭운전 버스’였다. 나머지는 환자복 행인, 핫팬츠 여성, 유세용 트럭 순이었다. 외국인 눈에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비친 우리 사회의 다섯 가지 표정. 그런데 이게 오히려 우릴 놀라게 한다. 너무도 평범한 일상사이기 때문이다.

우린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화의 차이, 몰이해로 치부해도 될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덤덤하게 지나칠 일은 아닌 듯하다. 한국도 지구촌의 일부이며 그 핵심은 글로벌 스탠더드, 즉 ‘가치의 공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국인 눈에 이상하게 비쳤다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춰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내 경험-17년간 매년 이십여 차례 해외취재를 통해 보고 느낀 외국의 일상과 정서-에 비춰서도 여기엔 분명 부끄러운 모습이 있다. 난폭운전 버스와 과다한 노출 패션이 특히 그렇다.

블로그에는 이 다섯 가지가 만화로 소개됐다. 난폭운전 버스에는 ‘롤러버스터(Roller ‘Bus’ter)’란 이름까지 붙어 있었다. 스릴과 공포의 화신인 ‘롤러코스터(Roller Coaster)’에 빗댄 표현이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필자는 늘 좌석버스로 서울 도심의 신문사로 출퇴근한다. 그 좌석버스가 롤러버스터로 돌변하는 건 오후 11시경이다. 과속과 급차선 변경은 물론이고 신호위반과 중앙선 침범도 다반사다. 그 광속(狂速)엔 생명의 위협도 느낀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 승객 중 어느 누구도 그런 기사의 광기 운전을 잠재울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다. 이미 길들어진 탓이다.

핫팬츠 차림에 외국인이 기겁한다는 데는 의아해할 한국인도 많다. 가슴보다는 허벅지 노출이 좀더 흉이 되는 구미와 인식 차이에서 오는 정반대 반응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의실종’을 연상케 하는 과다노출 핫팬츠 차림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그 블로그는 이런 차림이 ‘슬러티시(sluttish)’로 표현된다고 적시한다. ‘깔끔치 혹은 단정치 못한, (여자가) 행실이 나쁜, 추잡한, 상스러운’이란 뜻으로 ‘슬러트’는 ‘매춘부’다. 핫팬츠 차림 중엔 빨강 혹은 검정 스타킹에 청바지 잘라 만든 것을 입는 경우도 많다. 이런 건 더 황당하다. 미국 대도시의 뒷골목을 배회하는 후커(Hooker·매춘부)의 유니폼과 다름없는 차림이어서다. 동네 여중생 중에서도 이런 차림을 본다. 그걸 본 외국인의 당혹감이란, 글쎄….

승객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광란 질주의 롤러버스터, 행인에게 수치심과 불쾌감을 주는 천박한 노출. 이것 모두 ‘사회적 폭력’이다.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한식 등 전 세계로 퍼지는 한류(韓流)를 보라. 거기에 실려 전해지는 건 한국의 풍모다. 그에 어울릴 품격 있는 나라와 국민이 되고 싶다고? 그렇다면 이런 것부터 다스려야 한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롤러버스터#핫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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