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하태원]미사일 사거리의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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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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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은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한 탄두를 장착한 비행체다. 핵폭탄 또는 생화학 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은 가장 강력한 대량살상무기다. 하지만 미사일 확산을 규제하는 국제규범은 사실상 없다. 냉전 기간을 거치면서 미국과 소련이 개발한 탄도미사일 기술은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됐다. 이란과 이라크는 스커드 미사일을 상대국으로 마구 발사했다. 미국이 중심이 된 주요 7개국(G7) 국가들이 내놓은 최초의 결과물이 1987년의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다.

▷MTCR는 사거리 300km 이상, 탑재중량 500kg 이상의 미사일 완제품 및 부분품, 그리고 관련 부품과 기술의 이전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자율적으로 이뤄질 뿐 강제적인 규범은 아니다. 회원국이 아니면 확산방지 의무도 없다. 2001년 3월 가입한 한국이 MTCR의 통제를 받지만 북한은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한국은 1979년 미국과 별도의 협상으로 사거리를 180km 이내로 제한하기로 합의했고 2001년 미국과 1차 개정협상에서 사거리를 300km로 늘렸다. 하지만 탄두의 중량은 33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500kg 이하로는 핵탄두를 장착할 수 없다.

▷지난해 개시한 한국과 미국의 2차 개정협상이 올해 10월 최종합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동맹국 한국이 갖고 있는 미사일을 미국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북한은 이미 사거리 3000km 이상인 탄도미사일 무수단호를 실전 배치했고, 사거리 6700km에 탄두 중량 650∼1000kg인 대포동2호 미사일을 시범 발사했다. 남북 간 심각한 미사일 능력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최소 사거리가 800km는 돼야 한다. 하지만 사거리 연장으로 일부 지역이 사정권에 들어가게 되는 중국과 일본이 싫어한다.

▷일본이 한국의 미사일 능력 증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미국에 전달했다는 미확인 보도도 있었다. 사실이라면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최소한의 안보 자구(自救) 노력에 훼방을 놓고 있는 꼴이다. 일본은 이미 한반도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핵을 개발할 수 있다. 적성국가인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시험 발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의 미사일 최소 사거리 연장에 참견하는 것은 외교적 도발에 가까운 행위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횡설수설#미사일#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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