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3人3色 암스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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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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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최근 세계 주요 통신사들은 ‘3명의 동명이인(同名異人) 암스트롱’ 기사를 잇달아 타전했다. 모두 첫 보도가 긴급(URGENT)으로 분류된 중요 뉴스였다.

미국 여자 사이클의 간판 크리스틴 암스트롱(39)은 1일 2012년 런던 올림픽 사이클 도로독주에서 우승해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전설의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41·미국)은 24일 금지약물 복용 혐의로 투르 드 프랑스 7회 연속 우승 타이틀 박탈을 포함해 영구 제명의 중징계를 받았다.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미국)은 25일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유시유종(有始有終)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성공한 인생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두 사이클 스타는 삶의 궤적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공교롭게도 크리스틴(Kristin)은 랜스의 전 아내와 이름 철자까지 똑같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 당시 국내 여러 언론은 ‘부부 사이클 황제 탄생’이라는 오보를 냈다.

트라이애슬론(사이클+수영+달리기) 선수 출신인 크리스틴과 랜스는 치명적인 질병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화신’이다. 크리스틴은 11년 전 엉덩이뼈가 퇴화하는 골관절염 진단을 받았지만 올림픽 시상대 꼭대기에 두 대회 연속 올랐다. 1996년 생존율 3%의 말기 고환암 진단을 받은 랜스는 세계 최고의 도로사이클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를 1999년부터 7년 연속 제패하는 금자탑을 쌓았다.

두 선수는 은퇴했다가 현역에 복귀한 것도 닮았다. 크리스틴은 2009년 “나는 지쳐서가 아니라 남편이 아이를 원하기 때문에 은퇴한다”고 밝혔고 2010년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2년 만에 다시 세계 정상에 올라 은퇴의 변(辯)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랜스는 미국반도핑기구(USADA)의 징계를 수용하면서 “내가 항소하지 않는 것은 도핑 혐의를 인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랜 법정 공방으로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이는 자신이 암 환자를 돕기 위해 설립한 랜스 암스트롱 재단에 3억2500만 달러(약 3688억 원)를 기부한 후원자들에 대한 ‘배임’이다. 랜스의 몇몇 발언은 스포츠계 명언으로 회자돼 왔다. “고통은 순간이지만 포기의 여파는 평생이다” “1%의 희망만 있어도 나는 달린다.” 이에 비춰보면 랜스는 1%의 희망도 없어 항소를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도로사이클은 팀플레이가 승부의 관건이다. 팀의 간판스타를 위해 나머지 동료들은 경쟁 팀 에이스를 견제하는 데 주력한다. 랜스는 동료들의 희생 덕분에 파리 개선문을 배경으로 승리의 V자를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팀플레이는 깨지고 말았다. 랜스의 동료 5명 중 2명은 제명됐고 3명은 중재 절차를 밟고 있다. 동료인 타일러 해밀턴은 지난해 미국 CBS 시사프로그램 ‘60분’에 나와 “랜스 암스트롱은 1999년부터 3년간 금지약물인 에리스로포이에틴(EPO)과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했다”고 폭로했다.

크리스틴은 코치로 변신해 사이클 인생을 이어갈 것이라고, 사이클계에서 추방된 랜스는 암 환자 지원사업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한때 대학교수로 강단에 섰던 닐은 생전에 공개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삶에 정답은 없다. 매일 기사 마감에 쫓기며 사는 기자에게 세 사람이 묻는 듯하다. 인생은 어떻게 마무리할 생각이냐고.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ysahn@donga.com
#광화문에서#안영식#암스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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