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안 교수 닮은 ‘안철수재단’의 모호 화법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7일 03시 00분


안철수재단이 어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을 염두에 둔다”라면서도 “현재의 재단 명칭을 유지하면서 정해진 사업계획에 따라 업무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안철수재단은 구체적인 사업계획과 일정을 밝히지 않았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대선 출마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라는 모호한 화법(話法)으로 대통령선거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는 것과 닮아 있다.

선관위는 지난주 “안철수재단의 기부활동이 선거법 114조, 115조의 기부행위 제한 규정에 위반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후 재단 명칭에서 ‘안철수’ 이름을 삭제하는 등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하지만 기부행위를 대선 이후로 미루면 공직선거법상 아무 문제가 없다. 결국 안철수재단은 ‘안철수’ 명칭을 유지함으로써 ‘안철수=기부천사’라는 정치적 이미지를 풍겨 사실상 안 교수의 선거운동을 도우면서도, 법적 시비를 피할 수 있다.

이런 방식에 법적 하자가 없다고 해도 정정당당하다고는 볼 수 없다. 선관위 유권해석의 핵심은 안 교수를 대선 입후보 예정자로 판단했고, 그래서 입후보 예정자의 기부행위를 엄격하게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입후보 의사를 밝힌 자로 한정해 (선거법 위반) 행위 유형을 규정할 경우, 입후보 의사를 밝히지 않은 자가 사전선거운동을 해도 처벌할 수 없게 돼 더욱 불평등한 규정이 된다’고 판시했다.

안철수재단은 “법적으로 출연자로부터 독립된 별개의 법인임에도 재단의 독립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된 것은 유감”이라며 선관위 유권해석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선관위가 ‘기부재단을 만들어 기부하려면 대선 4년 전부터 해야 한다’고 적시한 것은 기부재단 활동의 순수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대선 입후보 예정자’가 대선을 10개월 앞두고 설립한 기부재단이 선거와 무관한 ‘순수성’을 주장할 수는 없다.

안 교수는 선거 공약집과 다름없는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강조했다. “경쟁 과정이 공정하다는 것은 특권이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국가기구들이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선관위에 예비 후보자로 등록해 공정한 경쟁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안 교수가 지금처럼 전략적 모호성으로 일관한다면 이미 국민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호된 검증을 받고 있는 여야 대선주자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
#안철수재단#안철수#대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