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궁기]자살로 식구들에게 보험금 주고 가겠다는 생명보험 가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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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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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기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 교수
남궁기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 교수
“이렇게 어렵게 사느니 차라리 내가 죽어 식구들한테 돈이나 주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진료실에서 상담을 하던 환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렇게 털어놓았다.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2년이 지나면 자살하더라도 보험금이 지급돼 가족이 경제적 곤란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가족을 위해 자살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 봤다고 한다. 자신이 살아 있어서는 가족을 제대로 부양할 수 없지만, 자살하고 난 뒤 가족이 보험금을 타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으니 괜찮은 방법 아니냐는 설명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생명보험에서는 자살에 대한 무보장 기간을 가입 후 2년으로 정하고 있다. 설사 보험금을 노리고 보험에 가입하더라도 첫 가입 당시의 자살 의도가 2년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고 봐서 면책기간을 2년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즉 2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의 자살은 보험 가입 동기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봐서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필자의 소견으로도 생명보험의 자살 면책기간 2년은 너무 짧다. 주요 국가들도 과거에는 자살 면책기간을 2년으로 정한 경우가 흔했지만, 최근에는 그 기간을 연장하거나 보험금 지급 조항을 매우 까다롭게 바꾸고 있다. 일본은 과거 1년이었으나 생명보험에 가입한 뒤 13개월째에 자살하는 사람이 크게 증가하자 3년으로 연장했다. 독일도 2008년에 생명보험 가입자의 자살 면책기간을 3년으로 명시한 바 있다.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는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는 명제는 살인은 물론이고 자살도 무거운 범죄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고통스러운 질병이나 극심한 가난 등의 험난한 현실을 견디는 것보다 차라리 자살을 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는 않는다. 고통의 시간을 참고 노력하다 보면 해결책이 나오기도 하고, 견디는 힘이 생겨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들이 2년이란 시간을 정한 데는 그 나름의 근거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예전보다 훨씬 더 살 만한 세상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그 이면엔 돈이 모든 가치보다 중시되는 척박한 세태 또한 무시 못 할 속도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부 사람들에게 고액의 보험금은 자살을 부추기는 충분한 동기가 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금융당국에서 자살에 대한 무보장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다. 차제에 생명보험을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자살의 무보장 기간을 적어도 3년, 아니 5년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는 정부의 첫째 사명이다.

남궁기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 교수
#기고#남궁기#자살#생명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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