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보육 지원 선택권 넓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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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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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마음수양서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저자 혜민 스님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사는 맞벌이 엄마들에게 “새벽 6시에 일어나 45분간 놀아주라”고 트위터에 올렸다가 “엄마를 말려죽일 셈이냐”는 워킹맘들의 격한 항의를 받고 사과 글을 올렸다. 어디 혜민 스님뿐이랴. 그도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존재라는 ‘모성신화’에 갇혀 있는 여러 보통사람 중 한 명일 뿐이다.

모럴해저드 부추기는 무상보육

모성신화는 여러 실증연구에 의해 깨지고 있다. 세러 블래퍼 허디는 ‘어머니의 탄생’이란 책에서 어머니는 희생적이고 여성은 수동적이라는 믿음은 가부장제 사회가 낳은 음모라고 주장한다. 그는 동물연구를 통해 현실의 어머니와 여성은 맹목적인 양육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전략가이자 유연한 기회주의자라고 진단했다. 예컨대 설치류인 코이푸는 새끼를 임신했는데 암컷이면 기막히게 알아채고 유산시켜 버리기도 한다. 암컷들은 한 새끼에게 먹이를 몰아줄지, 골고루 나눠줄지도 전략적으로 결정하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여자가 아무리 전략적으로 임신과 출산 여부를 결정한다고 해도 일단 어머니가 되면 직접 자식을 키우고 싶은 것이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다. “아기는 태어나서 세 살까지 평생의 효도를 다 한다”는 말처럼 갓난아기를 키우는 기쁨은 대단한 일이다. 아이가 첫발을 뗄 때, 말문이 트였을 때, 방긋 웃어줄 때 부모들은 기적을 경험하며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는다.

최근 보육정책을 보면 엄마를 육아의 부담에서 해방시켜 주는 데서 나아가 보육시설에는 부정수급, 엄마에게는 모럴해저드를 낳는 단계로 치닫는 듯하다. 양육수당은 소득하위 15%에게만 지급하는 데 비해 보육료와 유치원비 지원 대상을 확대하다 보니 가정에서 애 키우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시설보육 대국(大國)’이다. 0∼2세 보육시설 이용률(50.5%)은 2009년 기준으로 1, 2위인 덴마크(83%)와 스웨덴(66%)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위다. 0∼2세 무상보육이 실시되는 지금은 훨씬 높을 것이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어머니 취업률은 각각 76.5%와 72%인 데 비해 우리는 29.9%에 불과한데도 그렇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이들의 바람직한 성장’에 대한 논의가 무상보육 담론에서 빠져 있다는 점이다. 두뇌와 신체가 빠르게 발달하는 0∼2세는 아기가 주된 양육자와 정서적으로 강력하게 얽히는 시기다. 그러나 시설보육에서는 가정보육만큼 원활한 일대일 작용이 일어나기 어렵다. 영유아보육법상 교사 대 영아 비율은 1 대 3으로 한 명이 세 명을 돌보지만 보육교사 처우가 약하다 보니 보육교사가 자주 바뀌는 일이 빈번하다. 그런 이유로 보육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OECD도 0∼2세는 가정양육이 바람직하며 시설보육 비율은 30% 미만으로 유지하기를 권고한다.

양육수당·육아휴직 확대로 가야

남자 혼자 벌어서는 살기 힘든 세상에서 엄마가 집안에서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시설보육이 나쁘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표준화되고 검증된 보육프로그램은 가정보육이 갖지 못한 장점도 갖고 있다. 다만 아기가 어릴수록 아기와 일대일 상호작용에 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주된 양육자가 되도록 보육제도가 설계돼야 한다.

요즘 육아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과도해 기쁘면서도 어리둥절하다. 그런데 시설보육에 가는 아이들에게만 돈을 몰아주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를 직접 돌볼 수 있기를, 그러면서도 직장을 잃지 않기를 원한다. 일하지 않는 엄마도 양육수당을 받아야 한다. 양육수당으로 직접 아이를 키우든, 보육시설에 보내든 엄마가 편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엄마들의 마음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알 일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보육 지원#보육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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