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수정]익명의 전화폭력도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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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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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
이수정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
재판 단계에서 성폭력사건을 지원하다 보면 언제나 놀라게 되는 점은 분명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경험한 사건은 한 가지인데 어찌하여 양쪽의 입장이 그렇게도 상반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물적 증거를 확보하기 힘든 강제추행사건이나 성희롱사건의 경우에는 진술이 더욱 엇갈린다. 그와 같은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실체적 진실을 찾아내야 하는 일은 고도의 경험과 직관이 필요한 문제다.

민원센터 상담원 상대 성희롱 많아

물론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당사자도 있다. 이 경우에는 진술 당시 사건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진술의 태도나 행동에서도 거짓말의 징후가 어렴풋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경우는 스스로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다. 틀림없이 피해자에게는 문제가 되는 행동을 했음에도 피해를 준 사람은 그것이 상처가 될 리 없다고 주장한다. ‘귀여워한 것에 불과하다’ ‘그냥 장난이었다’ 등 백보 양보해 상황을 재해석하자면 그런 생각도 가능했겠다는 혼돈이 잠시 머리를 스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바로 피해자의 입장이다. 가해자의 진술대로 피해자도 그 순간을 즐긴 것일까?

언어적 성희롱의 경우 특히 경계가 모호하다. 언어적 성희롱을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사람은 대부분 상대방이 자신을 유도했다고 주장한다. 상대의 도발적인 자세나 시선 혹은 친절한 인사가 먼저 자신을 자극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은 그에 대하여 관심을 표명했을 뿐 그것이 괴롭힘의 행위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차는 꼭 성범죄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보통의 남성에게서도 나타난다. 최근에는 여성 중에서도 남성의 신체에 대해 지나치게 노골적인 언사를 일삼는 경우도 늘고 있어 비단 이 문제가 남성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서울시는 민원을 접수하는 다산콜센터로 걸려오는 협박전화와 성희롱전화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고 한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불편한 민원을 접수시킬 수 있다는 이점을 이용해 그동안 수도 없이 걸려온 전화 중에는 상담원을 언어적으로 비하하고 괴롭히는 전화도 많았다는 것이다.

전화를 하는 사람 중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이 같은 괴롭힘을 일회적 ‘장난’ 정도로만 생각한 경우도 있었을 터지만 개중에는 여성상담원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데서 비뚤어진 성적 욕망을 충족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상당한 고의성을 가정할 수 있으므로 소재를 파악해 처벌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에도 어떤 형태로든 처분은 필요한데 아마도 그 내용은 성교육이 되어야 할 것 같다. 특히 경미한 성범죄 행위자인 경우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현재의 형사사법제도 역시 심각한 성범죄만을 문제 삼다 보니 이들에게 시간이나 노력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법적 제재의 범위에서 벗어나 별다른 죄의식 없이 타인을 괴롭히는 행위를 계속하게 된다.

성범죄 예방위해 청소년도 엄벌을

막상 단속을 시작하면 상담원을 괴롭히는 전화 중 상당 부분은 철없는 아동이나 청소년에 의해 저질러졌을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경미한 사안이라 할지라도 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발생하는데, 이들에게는 언어적 성희롱도 차후 심각한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그와 같은 무책임한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겪게 될 고통이다. 자신의 행위가 경우에 따라서는 타인을 평생 정신장애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음을 꼭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이수정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
#전화폭력#언어적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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