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블랙아웃

  • Array
  • 입력 2012년 6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한국인 한 사람당 마시는 술의 양은 세계 11위, 알코올 도수를 감안하면 세계 1위다. 술에 몸을 맡겼다가는 전날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뇌에 입력이 안 됐으니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불가능하다. 이런 상태를 영어로 ‘블랙아웃’이라고 한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로도 블랙아웃을 겪는다. 바로 대규모 정전이다. 필름이 끊기듯,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순간에 모든 지역의 전기가 전면적으로 끊겨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

▷지난해 4월 16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8회초 두산 정수빈 선수가 기습번트 후 1루로 달리던 순간 야구장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변압기 이상 때문이었다. 경기는 서스펜디드(일시정지) 경기로 처리됐다. 지난해 9월 15일 서울 목동야구장. 두산과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 1회말에 또 전기가 나갔다. 이번에는 한국전력거래소가 전력 소비의 급증에 따라 블랙아웃을 우려해 순환 정전을 실시한 탓이었다. 이날 정전으로 야구장뿐 아니라 전국 753만 가구와 공장, 엘리베이터 등의 전기가 끊겨 피해보상 요구가 14조 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날 상황은 블랙아웃은 아니었다.

▷2003년 8월 14일 미국 뉴욕 주 등 8개 주가 갑자기 블랙아웃 됐다. 일부 지역의 과부하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탓이었다. 지하철과 항공기는 발이 묶였고 휴대전화도 불통됐다. 상수도 펌프가 멈춰 수돗물 공급은 끊겼고 하수가 거리로 역류했다. 비상발전기를 켰지만 병원 전력이 모자라 환자들도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전기가 끊긴 하루 동안 비상구조 요청은 평소보다 60% 늘었다. 블랙아웃은 주로 대도시에서 터져 주민들을 엄청난 혼란과 고통으로 이끈다.

▷어제 전국적으로 절전 훈련을 했다. 여름 전기 수요의 급증에 대비해 블랙아웃 사태를 피하기 위한 순환 정전 연습이었다. 공장, 아파트, 상가, 지하철에 전기가 끊길 경우 대응 매뉴얼도 점검했다. 일각에서는 “전체주의 냄새가 난다”며 반대했지만 여유 전력이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이런 대비 훈련은 필수다. 다만 소비 절약에만 기댈 일이 아니라 지난 정부가 절반쯤에서 중단한 전력산업 구조개편 작업을 어떤 방향으로든 매듭 지어야 한다. 정부 정책이 블랙아웃을 불러선 안 된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술#블랙아웃#정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