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희균]‘헬리콥터 대디’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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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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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지난달 서울 A대의 학과 사무실에 불쑥 등장한 자칭 ‘B대 교수’의 얘기가 대학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50대 남자가 다짜고짜 교직원을 붙잡고 따졌다. “우리 아들이 이 학교에 입학하더니 맨날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온다. 어제는 밤 12시가 넘어서 들어왔다. 도대체 학교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그는 “우리 애를 오후 9시 전에 들여보내겠다는 서약서를 쓰라”고 우기다가 반나절 만에 돌아갔다. 교직원들은 어이없는 해프닝이라 여기다가 그가 실제 신입생의 아버지이고, 알 만한 대학의 연구원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지난해 말 신입사원을 뽑은 대기업의 면접 현장. 어느 지원자가 반백의 아버지와 면접장에 함께 왔다. 그는 면접을 마치고 나오면서 “아빠 말대로 대답했는데 반응이 영 별로네. 건물도 후지고. 이 회사 이상해”라며 응석(?)을 부렸다. 아버지는 다른 지원자들에게 “어느 대학 나왔느냐” “인턴은 어디서 했느냐”고 캐묻다가 인사과 직원에게 제지를 당했다. 특목고와 명문대를 나온 이 지원자는 탈락했다.

요즘 대학이나 기업 관계자를 만나면 극성 아버지 때문에 당황스럽다는 하소연을 자주 듣게 된다.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고 모든 의사 결정을 도맡아 하는 ‘헬리콥터 맘’도 모자라 ‘헬리콥터 대디’가 늘어난다는 전언이다.

헬리콥터 맘이 주로 초중고교생 자녀의 내신 관리나 입시에 매달린다면 헬리콥터 대디는 대학생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자녀의 삶에 적극 나선다는 차이가 있다. 다 큰 자식을 뒤늦게 품 안의 자식 취급하는 모양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 중에 의외로 헬리콥터 대디가 많다. 자신처럼 성공시켜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자녀의 진로 설계와 취업 준비에 직접 뛰어든다. 자기 세대와 달리 진학도, 취업도 전쟁 같은 상황이다 보니 상식을 뛰어넘는 요구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신입사원이 무단결근을 하고 연락이 두절되면 며칠 뒤 아버지가 찾아와 사직 절차를 처리하는 일도 잦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자녀가 수당이나 퇴직금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까 봐 걱정해서이거나, 혹은 아버지가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라며 사직을 종용한 경우다.

심지어 대학에서 교수를 뽑을 때 아버지가 지원서를 들고 왔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우리 애가 아직 외국에서 공부 중이라 직접 오지 못했다”고 얘기한다고 한다. 실상은 다르다. 지원자가 국내에 있는데도 소위 잘나가는 아버지가 직접 나서는 식이다. 개중에는 고위 공무원도 있다니 ‘빽’을 써보려 안간힘을 쓴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자녀의 교육에 관심을 갖고, 체험 활동을 같이 하면서 진로 고민을 공유하는 참여형 아버지가 늘어나는 현상은 정말 긍정적이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 했다. 도가 지나쳐 다 큰 자녀를 놓아주지 못하면 자녀가 성숙할 수 있을까.

가뜩이나 우리 젊은이들은 선진국에 비해 자립심과 도전정신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국제기구에 인턴으로 진출한 똑똑한 젊은이들이 정규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고배를 마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스스로 일을 계획하고 주도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서다. 엄마 손에 이끌려 학원에 다니고, 아빠 말대로 진로를 준비하니 적극성과 창의성이 생기기 힘들다.

학창 시절은 헬리콥터 맘에게, 사회 진출 준비는 헬리콥터 대디에게 맡긴 젊은이라면 스펙은 화려할 수 있다. 하지만 나날이 복잡다단해지는 사회에서 언제까지 경쟁 우위를 누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헬리콥터 대디 전성시대가 올까 봐 두려운 이유다.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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