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이재]학교폭력은 안 되고 가정폭력은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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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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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재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김이재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로 자살하는 학생이 연이어 발생하자 정부 차원에서 학교폭력 문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사소한 괴롭힘도 범죄’라며 교사와 학교가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단호하게 대처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폭력을 조장하거나 심지어 미화하는 영화, TV 프로그램,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학생을 선도하고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은 ‘폭력문제에 대한 불감증’을 치료하려면 좀 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학교 외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바로 가정이다. 하지만 ‘2010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간 가정폭력이 있었다는 응답이 53.8%에 달해 우리나라의 가정폭력은 학교폭력 못지않게 심각한 상황이다. 가정폭력이 발생해도 피해자는 신고할 생각을 하지 않고, 경찰이 출동해도 별다른 조치 없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으며, 어렵게 기소가 되더라도 법원에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만일 가정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수시로 모욕을 주거나 손찌검을 가해도 처벌받지 않고 부모가 자녀에게 “성적이 그게 뭐냐, 정신 차려라”며 머리채를 휘어잡고 멍이 시퍼렇게 들도록 구타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교사가 학교에서 ‘사소한 괴롭힘이나 왕따도 폭력이고 범죄’라고 가르치고 상담과 인성교육을 강화한들 학교폭력이 사라질까?

여성가족부의 발의에 의해 ‘가정폭력 범죄의 신고에 따라 현장에 출동한 사법경찰관리는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신고 현장에 출입하여 조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이제는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가해자가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말라”며 문을 열어 주지 않더라도 문을 따고 집 안에 들어가 현장에서 조사하고 피해자를 위해 적극적인 보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겼다. 부부간 폭력뿐 아니라 부모가 집에서 아이를 때리거나 학대하는 경우에도 경찰이 바로 집 안에 들어가 폭력을 막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다. 새 법안이 잘 실행되도록 경찰과 법원이 적극 협조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가정폭력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학교폭력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폭력이 가정에서 발생하든, 학교에서 발생하든, 학생들의 인성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별 차이가 없다. 가정폭력을 방치한 채 학교폭력만 막으려고 한다면 ‘학교에서는 사소한 폭력도 범죄이지만, 집에서는 괜찮다’는 왜곡된 인식이 오히려 강화될 수도 있다.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사와 학교만 노력해서는 한계가 있으며 그동안 한국사회가 얼마나 폭력 문제에 무관심했는지, 폭력 가해자를 대충 봐 주며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얼마나 둔감했는지, 우리 모두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학교폭력 문제는 가정폭력과 연계해 접근해야 한다. 강화된 가정폭력특별법의 시행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정 및 학교폭력 문제의 심각성과 폐해를 인식하고 교과부와 여성부가 협력해 효과적인 정책을 실행할 기회다.

김이재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학교폭력#왕따#가정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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