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진명]지식-기술의 융·복합으로 수준 높은 연구 달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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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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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소설가
김진명 소설가
내가 대학 2학년이었던 1977년 시사주간지 타임은 세계 100대 기술을 발표했다. 이 중 60여 개를 미국이 보유하고 있었고 일본이 20여 개, 나머지 10여 개를 독일 등 유럽 국가가 갖고 있었다. 나는 참담한 슬픔에 빠졌다. 지구가 망하는 날까지 나의 조국 한국은 100대 기술 중 단 한 개도 보유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은 여성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가발이었다.

30여 년이 지난 현재 기적이 이루어졌다. 세계를 끌고 가는 핵심 기술 중 상당수가 한국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휴대전화 등 전자기술은 말할 것도 없고 자동차, 조선 분야에서도 한국은 앞장서 달리고 있다. 차세대 에너지혁명을 이끌 핵융합로 공동 개발도 우리나라가 미국, 일본, 유럽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고 있다.

세계를 열광하게 만드는 이런 기술들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오랜 세월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소리 없이 일해 온 과학기술자들을 지목하고 싶다. 열악한 경제와 어수선한 정치,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밤새 연구한 과학기술인의 집념과 끈기 덕분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가와 대접은 인색하기만 하다. 2008년 초 몇 개의 부처를 통폐합하게 되었을 때 맨 먼저 과학기술부를 없애기로 여야가 합의했다. 이 치열한 국가 간 경제전쟁 시대에 과학기술만이 조국의 미래이거늘 과학기술부를 그렇게 쉽게 없애다니. 정부와 국회가 늦게라도 그 우를 깨닫고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를 만들어 과학기술계의 방향을 제시하도록 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국과위는 출범 후 조사와 연구를 한 끝에 27개 정부 출연 연구원 중 18개를 하나로 모아 ‘국가연구개발원’으로 단일화하고 나머지 9개는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정부부처 4곳으로 집중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차세대 과학기술 창도를 위한 모델이자 과학기술자들이 앞만 보고 달릴 수 있는 요람을 설계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는 관련 법안을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사회가 과학기술의 연구와 개발에 이렇게 무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지적하고 싶다. 거대한 인구를 담보로 한 중국과 인도가 무섭게 따라붙는 데다 기술선진국 미국, 독일, 일본 등은 저만치 앞서 있는데, 이렇듯 과학기술에 무관심하다면 미래는 누가 어떻게 보장한다는 말인가.

부처별로 흩어져 있던 정부 출연 연구원들을 개편해 ‘국가연구개발원’으로 단일화한 목적은 개별 연구소별로 닫혀 있던 연구 분야의 벽을 허물고 지식과 기술의 융·복합을 통해 더욱 정교하고 수준 높은 연구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간 다른 연구소에서 무얼 하는지 모르고 같은 걸 연구하느라 들인 시간과 인력, 돈의 낭비는 상상 이상이다. 또 복합적 다기능 제품은 한 분야의 기술만으로는 결코 얻어낼 수 없기 때문에 연구소의 대통합은 필연적이다 못해 운명적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과학기술계는 새로운 시대를 위한 대변혁의 출사표를 감연히 던지고 있다. 나는 정치인들에게, 국민 모두에게 과학기술계의 이 혁명적 대장정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 주자고 외치고 싶다.

김진명 소설가
#기고#김진명#기술#컨버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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