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희균]아픈 부모, 더 아픈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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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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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남의 부부 싸움을 엿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열 테이블 남짓한 카페 전체가 술렁일 정도로 싸움은 격했다. 멀찌감치 앉은 나조차도 1시간 넘게 이어지는 싸움을 듣자니 본의 아니게 그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됐다.

부부에게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가 있다. 학부모 모임에 적극적인 여자는 큰아이를 영어와 수학 학원에 매일 보낸다. 아이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동네 친구들과 미국인에게 회화를 배우고, 창의력이라는 이름이 붙은 과학학원에 가며, 일본계 프랜차이즈 음악학원도 다닌다.

둘째는 유치원이 끝난 뒤에 영어 수업을 추가로 듣고 오후에 집에 와서 학습지를 푼다. 유치원생이 100만 원씩 쓰는 게 정상이냐는 남자의 말을 들어보니 영어유치원이나 놀이학교에 다니는 모양이다.

남자의 불만은 대단했다. 애들은 자연과 함께 체험학습을 해야 한다며 경기도 어딘가에 있는 캠핑장 얘기를 되풀이했다. 학원에 돈 버리지 말고 밖으로 데리고 다니라고 했다. 아내가 몇십만 원짜리 과학교구를 샀던 일을 따질 때는 테이블을 들었다가 놓을 지경이었다.

학교에 자주 찾아가는 여자는 아이가 반에서 중간 성적도 안 된다며 방방 뛰었다. 학교에 한 번도 안 가 본 아빠는 때가 되면 다 한다며 더 화를 냈다. 엄마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큰애가 영어를 늦게 시작해서 망했다. 당신처럼 정신 나간 사람 때문에 우리 애들이 엉망”이라고 했다.

그저 한 부부의 싸움이었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한 문제가 총체적으로 녹아 있는 전투였다. 다투는 모습을 보자니 그 집 아이들이 상처 받는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아이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 부모의 불화라는 연구 결과는 너무나 많다.

부부는 다투느라 아프고, 자녀는 부모 때문에 더 아프다. 부부가 교육관에 대해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당장의 성적이나 학원 수에 급급해 정작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목표가 없어 보였다. 남자는 자신의 이상만 고집하느라 정작 아이들이 몇 시에 학교를 마치는지, 학교에서 무슨 과목을 배우는지, 숙제의 분량이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전혀 몰랐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상담하러 온 학부모들에게 “자녀가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세요”라고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한참 머뭇거리다 “의사나 판사가 되면 좋겠지요”라거나 “이왕이면 서울대 가야겠지요”라고 말하는 학부모가 상당수라는 얘기였다. 자녀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도록 이끌겠다는 고민을 할 틈이 없으니 제대로 된 답이 나올 리 만무하다.

엄마수업, 아이의 스트레스, 마더 쇼크,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 최근 교육 분야의 베스트셀러 목록이다. 부모의 불안한 마음, 거기서 파생되는 자녀의 아픈 마음에 대한 위로와 해법을 갈구하는 이들이 많은 모양이다.

자녀에게 학습지를 하나 더 시켜 공부 잘하는 사람을 만들 것인가, 여행을 한 번 더 시켜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만들 것인가. 일률적으로 정해진 답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부부간에는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에 대해 최소한의 합의점이 있어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부모의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부모들은 이 문제를 논의하는 데 서툴다. 부모도, 아이도 아프지 않으려면 부부간에 이 질문부터 던져보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뉴스룸#김희균#자녀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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