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윤호]‘음식 장난’ 아니라 ‘먹거리 범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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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이번에는 계란 문제가 터졌다. 짐작건대 ‘아깝다’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병아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병아리가 나오지 않아 한꺼번에 수백 수천 개의 계란을 폐기 처분해야 하니 어찌 아깝지 않겠는가. 일부 음식점 주인은 손님이 젓가락질 한 번 안 한 것 같은 반찬이 아까워 이른바 ‘재활용’하고 싶은 마음에 흔들리고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들을 아까워 버리지 못한다. 이런 마음은 어쩌면 음식 버리는 것을 죄악시하며 어렵게 살던 시절 생선을 발라먹고 남은 가시조차 아까워 버리지 못하던 우리의 정서일 수 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이런 정서가 사법부의 판단으로까지 연결되는 것 같다. 식품사범에 대해 우리 법률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가하게 돼 있지만 90% 이상이 벌금형 약식명령에 그친다고 한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위해식품의 제조 및 유통에서 시작해 사법부의 가벼운 선고에까지 이르는 일련의 문제는 우리나라 특유의 음식에 대한 관념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문화와 정서의 문제가 아닌 위생관념과 공공보건의 문제, 아니 생사의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위생관념의 문제라고만 보는 것은 식품사범에 대한 문제를 가볍게 치부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이런 잘못된 생각이 결국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2009년 여름 우리는 신종 인플루엔자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받았던가. 당시의 위생 문제에 대한 민감함과 경각심을 음식 문제에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흔히 ‘음식 장난’이라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결코 장난이 아니라 ‘먹거리 범죄’다. 따라서 음식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풀어버린다면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물론 우리 국민들의 위생관념이 더욱 철저해진다고 하더라도 식품사범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밭에서 직접 가꾼 채소를 자신의 주방에서 조리하지 않는 이상 식품의 제조 및 유통 과정을 지켜볼 수 없다. 오늘날 식품의 제조 유통 과정은 분업화되고 전문화돼 있기에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 수도 없다. 그래서 제조 과정에서 ‘쓰레기만두’가 만들어지고 젓갈을 폐드럼통에 보관하며 유통 과정에서 ‘납꽃게’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처럼 다분히 의도적이며 치밀하게 이루어지는 식품범죄는 자신의 권한이나 지위를 남용해 경제적 이득을 챙기려는 화이트칼라 범죄를 닮았다. 즉, 범죄행위의 발생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고 책임 소재와 피해자도 불분명하다. 이에 범죄자들은 사회에 커다란 해악을 끼쳤음에도 강력범죄자들만큼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심지어 범죄자 대부분이 실형을 선고받지 않는다는 점까지 꼭 닮았다.

식품범죄 문제가 이처럼 심각함에도 식품에 대한 위해행위가 범죄라는 인식의 공감대가 잘 형성되지 않고 있다. 규범학적인 측면에서 이것은 식품범죄가 형법이 아닌 식품위생법에 의해 행정벌로 처벌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에 식품범죄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형벌을 부과하는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분명 있으나 무분별한 특별법의 제정은 문제의 소지가 있으므로 그에 앞서 현행 법령을 통한 확실한 처벌이 선행돼야 한다. 실제적인 처벌이 없다면 ‘7년 이하의 징역, 1억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강력한 규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이 식품에 대한 위해행위가 범죄행위이며 공공보건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라는 인식의 확산이 요구된다. 사회 전반으로 이런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도 멜라민분유 같은 테러행위에 가까운 식품범죄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시론#이윤호#먹거리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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