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재명]그놈의 공천… 최재오, 권방호

  • Array
  • 입력 2012년 3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재명 정치부 기자
이재명 정치부 기자
영화 ‘철의 여인’에서 마거릿 대처(메릴 스트립)가 청운의 꿈을 품고 의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순간, 한 의원이 그를 반긴다. “정신병원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나라 국회를 정신병원에 비유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요즘 국회 기자실에 있다 보면 섬뜩할 때가 적지 않다. 기자회견을 하겠다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와 와락 눈물을 쏟는가 하면, 귀청이 떨어져라 목청을 높이기도 한다. 국회가 격한 감정의 도가니가 된 것은 ‘그놈의 공천’ 때문이다.

공천 때면 온갖 추문이 출처 없이 떠돈다. 실력자의 전화 한 통에 4년을 공들인 지역구가 바뀌고, 듣도 보도 못한 이들의 ‘낙하산 행렬’이 이어진다. 그만큼 공천은 정치권력의 핵이다. 권력은 언제나 뒷말을 낳는다. 더욱이 공정한 권력이란 ‘착한 사기꾼’처럼 모순이다. 마음이 통하거나 인연이 있으면 챙기고, 척진 사람은 내치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그러니 줄을 대야 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측근 의원실에는 의원의 일정을 묻는 문의 전화가 쇄도한다. 여차하면 지방에라도 쫓아가 줄을 대기 위해서다. ‘최재오, 권방호’ 찾아 삼만리다. ‘최재오, 권방호’는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이재오 의원과 이방호 당시 당 사무총장이 주물렀다면 19대 총선 공천은 ‘박심(朴心)’으로 통하는 최경환 의원과 권영세 사무총장이 움직인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당사자들은 억울할 수 있다. 경북 경산-청도가 지역구인 최 의원은 “시골에 있는 내가 서울 일을 어찌 아느냐”고 항변한다. 문제는 사실관계가 아니다. 사실보다 중요한 게 인식이다. 최재오, 권방호가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모두가 그렇게 인식한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이런 인식이 사실로 받아들여진다는 건 이번에도 공천 개혁에 실패했다는 의미다. 새누리당이 내세운 개혁 공천의 출발은 여론조사를 통한 현역 의원 하위 25% 컷오프였다. 하지만 새누리당 전체 지역구 의원 144명 중 왜 23명은 조사 대상에서 빠졌는지 설명이 안 된다. 출발부터 어긋났다.

여론조사를 개혁인 양 떠받들더니 막상 곳곳에서 여론조사 결과가 무시됐다. 도덕성에 흠결 있는 인사도 여럿 눈에 띈다. 자기들이 삼고초려한 전략 공천자를 검증 실패로 내친 건 이번 공천의 하이라이트다. “문대성은 돌려차기, 새누리당은 돌려 막기”란 우스갯소리도 나돈다.

민주통합당도 공천 잡음으로 지지율을 까먹으며 ‘자폭 정치’의 진수를 보여줬다. 공천 혁명을 불러온다는 모바일 경선은 죽음을 불러왔다. 무슨 수로 경선을 하든 조직이 없는 정치 신인이 경선을 뚫는다는 건 부자가 천국 가기보다 어렵다는 사실만 확인시켜 줬다.

공천 실패는 정치 실패다. 최악의 18대 국회는 최악의 공천에서 잉태됐다. 소신 없고, 국민 없고, 비전 없는 ‘3무(無) 정치’는 파벌과 족벌, 학벌에 얽매인 ‘3벌(閥) 공천’의 결과다.

당 태종 때 명재상 위징은 “세상을 바꾸는 데 1년이면 족하고 3년이면 늦다”고 했다. 4년마다 돌아오는 공천은 정치를 바로 세울 절호의 기회다. 1400여 년 전 위징 시대에도 3년이면 늦었다는데 우리는 정치를 바꾸기 위해 또 4년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그나마 새누리당 김무성, 조전혁 의원의 ‘아름다운 퇴장’마저 없었다면 이번 공천은 그저 악몽으로만 기억될 뻔했다.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