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훈]탈북자 북송돼도… 국회의원 맞아도… 늘 조용한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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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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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파리 특파원
이종훈 파리 특파원
유엔인권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엿새 동안 탈북자 북송 중단을 호소하는 활동을 벌이고 15일 스위스를 떠난 한국 국회대표단의 한 관계자는 “제네바 주재 한국대표부가 국회대표단을 불편해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기자가 지켜보기에도 실제로 한국대표부가 국회대표단의 방문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듯한 흔적이 여러 곳에서 감지됐다. 12일 유엔인권이사회 회의장에서 벌어진 국회대표단과 북한대표부 직원 간 충돌을 보는 한국대표부의 시각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자국을 대표한 국회의원이 소동에 연루됐다면 일단 상황부터 파악하는 게 순서다. 대표부의 시각에선 우리 국회의원들이 국제회의장에서 결례를 범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진상을 파악해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한 게 있으면 사과하면 된다. 그러나 대표부는 국회의원들에게 당시 상황을 물어보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북한 직원의 폭행은 전혀 다른 문제다. 팔꿈치로 여성 의원들의 옆구리를 찌르고 구둣발로 다리를 차고 팔목을 비틀며 밀어 넘어지게 할 정도의 폭행을 저질렀다면 한국대표부가 유감 정도는 표명해야 했다.

“한국대표단 중 두 명이 ‘공격적인 행동’을 했다”는 유엔본부 언론담당관의 말에도 대표부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북한 직원들의 폭력적 행동을 지적하는 정도의 반대논리는 개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은재 의원을 폭행한 북한 직원이 불과 몇 시간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크게 웃으며 회의장 주변을 돌아다닌 사실을 대표부는 아는지 모르겠다.

박선영 의원은 “대표부에 탈북자 문제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하자 ‘본부에서 공개적 활동은 자제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또 박 의원은 “알렉산더 알레이니코프 유엔난민기구(UNHCR) 부대표에게 북송 위기에 처한 생후 수개월 된 아기와 부부 얘기를 했더니 당장 관심을 보이며 가족 명단을 달라고 해 전달했다”며 한국대표부의 소극적인 태도와 상당히 대비가 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안형환 의원은 “집회 후 중국대표부에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타고 갈 버스를 빌릴 곳을 알려달라고 하자 대표부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14일 북한인권 집회에 참석한 미국인 카이저 씨는 전날 처음 탈북자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 달려왔다고 했다. 탈북자나 북한 인권 문제는 피부색, 이념, 종교에 관계없이 조속한 시간 내에 설득이 가능한 아주 보편적이고 인도적인 문제다. 그럼에도 제네바 주재 한국대표부의 태도는 북한 인권 얘기만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국내의 자칭 진보 성향 정치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제네바에서

이종훈 파리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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