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은혜]잘못 설계된 만 0∼2세 무상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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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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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혜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교수
박은혜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교수
만 0∼2세 보육비 지원정책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국가 재정을 담당하는 부처의 차관이 재앙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정책인데 막상 어디서도 만족하고 환영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전문가들은 만 0∼2세 보육비 지원정책이 이렇게 복잡해진 것은 보육시설을 경유하도록 정책을 설계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보육이 정부의 관심사가 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저출산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부모가 자녀를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이 확충되면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2009년까지 20조 원 가까운 재정을 쏟아 부었지만 2001년 이후 합계출산율은 거의 변동이 없다.

같은 문제를 경험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오히려 부모가 가정에서 만 2세 미만 자녀를 돌보도록 하는 가정친화정책을 시행하면서 문제를 해결했다. 가정친화정책은 부모뿐만 아니라 영아들의 두뇌 성장과 이후의 발달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책이다. OECD는 만 2세 미만 영아가 가정 밖에서 양육되는 비율을 전체의 30% 미만으로 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2010년 기준 보육재정은 5조7000억 원이었다. 수요자인 부모를 직접 지원하는 비용과 공급자인 기관을 지원하는 비용을 합한 것이다. 2월 민간 어린이집 휴원이라는 공급자의 전횡을 보며 아주 단순하게 이 돈이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를 수요자인 부모 입장에서 계산해 보았다. 2011년 현재 만 0∼2세에 해당하는 인구는 136만 명으로 추산된다. 정부에서 자녀 한 명당 연간 240만 원을 지원한다고 했으니 시설 이용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지원한다고 가정하면 약 3조20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그래도 2조5000억 원의 예산이 남는다. 이를 보육시설이 꼭 필요한 모든 맞벌이 부부(만 0∼5세 약 100만 명·2010 보육통계)에게 지원하면 어떨까. 자녀 1인당 연간 238만 원 정도의 지원이 가능하다. 만 0∼2세 자녀가 있다면 누구나 연간 24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고, 맞벌이 부부라면 자녀 1명당 연간 478만 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비용으로 질적인 교육과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논의거리지만 적어도 맞벌이 부부는 현재 보육료 단가와 맞먹거나 상회하는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양육 지원이 만 0∼2세에 한정되다 보니 다른 한편으로는 만 3∼5세 지원에 소홀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다행히 정부는 만 3∼5세 어린이를 위해 초등 의무교육과 동일한 개념의 보편교육 과정인 누리 과정을 시행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생애 초기 기본교육과 보호에 대한 국가의 방향성은 분명히 설정된 것으로 보인다. 소득 수준이나 시설 이용, 맞벌이 여부와 관계없이 만 0∼2세를 위해서는 양육수당을, 만 3∼5세를 위해서는 선진화된 유아교육을 보편적으로 제공하되 맞벌이 가정과 같이 추가 수요가 필요한 계층에는 그에 적합한 지원을 하는 것이다.

현재 국가가 보육에 사용하는 재정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음에도 어디에서,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되도록 설계됐기에 가정에서 자녀를 기르는 부모도, 맞벌이 부부도, 교사도 만족하지 못한 채 시설과 재정이 끝없이 증가해야 하는지 요지경이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이 광풍의 정책 앞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가정이라는 가장 안정되고 행복한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이유도 모른 채 질도 담보할 수 없는 기관에서 하루 종일 지내야 하는 우리의 미래 인재들이다.

박은혜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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