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용희]일그러진 팬덤문화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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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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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평택대 교수 소설가·문학평론가
김용희 평택대 교수 소설가·문학평론가
인간만큼 이해받고 싶어 안달하는 존재가 있을까. 이해받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하면 외로움에 지쳐 죽어버릴 듯한 존재가 인간이다. 초원에 나른하게 누워 있는 사자도, 잡목 사이에 핀 패랭이꽃도 인정해 달라고 애걸하진 않는다. 인간만이 ‘이해받고’ ‘인정받기’ 위해 투쟁한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화두는 ‘소통’이다. 어디서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여기 소통하려고 했으나 소통하지 못한 양자가 있다. 한쪽은 한쪽을 너무 사랑했다. 한쪽은 그 사랑이 고맙지만 너무 지나쳐 괴롭다. 스타와 광적인(?) 팬 이야기다.

편집증적 집착이 사생팬 폭행 불러

‘스타’란 팬들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온전히 성립된다. 사랑받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팬이 없다면 스타도 없다. 그런데 그 사랑이 지나쳐 괴롭힘(스토커)의 방식으로 나타난다면.

최근 한 매체는 스타와 사생팬 사이의 한 파국을 공개했다. JYJ 김재중과 박유천이 ‘사생팬’에게 폭행과 욕설을 가하는 음성파일이었다. 사생(私生)팬이란 스타의 사생활을 일거수일투족 추적하는 극성팬을 일컫는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사생팬은 24시간 스타의 사생활을 감시(?)하고 문자와 전화로 스토킹한다. 택시를 타고 스타를 쫓는 것은 기본. 스타의 집을 몰래 침입하기도 하고 물건을 훔쳐오기도 한다. 심지어 생리혈이 묻은 생리대를 보내고 폭행과 개인정보 도용까지 일삼고 있다. 최근 사생팬에게 뺨을 맞은 박유천의 사진이 온라인상에 올라왔다. 사진 속 박유천은 뺨을 맞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사생팬은 말했다. “이렇게 때리면 날 기억할 것 같아서.” 슈퍼주니어는 욕설을 적은 여성 속옷이 그들의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고 고백했다.

한국 사회에 팬덤문화가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라 할 만하다. 팬덤문화란 추종자들이 스타에게 일방적으로 종속되는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활동 의미를 찾는 것을 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취향과 선택을 스타와 동일시하고자 하는 데서 발생한다. 그들이 얻는 것은 자신들의 취향과 선택을 차별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스타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자 한다. 배용준을 흠모하는 일본 여성들이나 남성 아이돌그룹에 열광하는 10대 여성팬들. 그들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팬들은 스타를 통해 청춘이나 삶의 의미, 희망을 찾고자 한다. 계급적 지배질서에 종속되기를 원하는 이 끔찍한 현실에서 잠시 유예될 수 있는 시간 아닌가.

팬들의 스타사랑도 지나치면 안돼

실제 팬덤은 대중문화 개혁에 앞장서기도 했다. 2001년 가요 순위 프로그램 폐지운동이나 한국음반저작권협회의 무책임한 저작권 대행을 바로잡는 개혁에 앞장섰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개인의 감정이 과도한 집착으로 분출되고 극도로 흥분되는 경우도 있다. 이 사건이 그 실례다. 우리 시대가 느끼는 산만한 불안이 응축된 사건이었다. 사생팬들이 잃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오직 편집증적인 집착만이 남는다. 사생팬들은 스타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자기 정체성을 위한 인정투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의해 규정되는 자신은 허위의 자기일 뿐이다. 유명인이나 연예인도 마찬가지다. 토크쇼에서 사생활을 스스로 유포한다. 위험수위까지 폭로하기도 한다. 공사를 구분하지 않고 공을 위해 사를 희생하는 것이 각광받는 시대다. 하지만 자기 사생활 과잉노출로 잃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너 자신을 지키는 일, 너 자신을 찾는 일은 하나다. 그것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게 할 것이다. 당신 자신을 지켜라.

김용희 평택대 교수 소설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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