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의혹’ 반드시 파헤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7일 03시 00분


청와대가 2010년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 사건과 관련해 증거인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최근 “최종석 당시 대통령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으로부터 ‘모든 컴퓨터를 물리적으로 제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독자적으로 벌인 일로 청와대와는 무관하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으나 이번에 장 씨가 밝힌 정황은 당시 수사에 의문을 갖게 할 만큼 매우 구체적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2008년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리자 김 전 대표를 사찰했다. 김 전 대표는 불법 계좌추적과 압수수색에 시달린 끝에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인규 당시 공직윤리지원관 등 국무총리실 직원 7명을 기소했고 이들은 실형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소되지 않았다.

그러나 장 전 주무관은 검찰 압수수색 이틀 전인 2010년 7월 7일 최 행정관으로부터 “(컴퓨터를) 망치로 부숴도 좋고 한강에 버려도 좋다. 검찰에서 문제 삼지 않기로 민정수석실과 얘기가 됐다” “검찰에서 오히려 (증거인멸을) 요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폭로했다. 민주통합당은 “검찰이 청와대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공모 과정을 담은 업무분장표를 발견하고도 압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 사건을 국무총리실 직원 몇몇의 과잉 충성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볼 게 아니다. 청와대가 사찰에 개입하고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을 주도했으며 검찰이 공조해 사건을 축소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지만 이 사건 수사는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이 “실패한 수사”라고 자인할 만큼 부실했다. 검찰은 수사 착수 4일 만에 압수수색을 벌여 증거인멸의 소지를 남겼다. 장 전 주무관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훼손하기 전에 최 행정관으로부터 대포폰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고 공직윤리지원관실 문건에서 ‘BH(청와대) 하명’이라는 메모를 발견했지만 이것도 흐지부지됐다.

이 사건은 대법원의 최종심을 기다리는 상황이지만 새로운 증언이 나온 만큼 검찰은 재수사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지금껏 검찰에 따라붙는 ‘무능한 데다 수사 의지도 없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청와대도 내부 감찰을 벌여 제기된 의혹을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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