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25>‘도가의 이상향’ 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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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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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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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화정((체,태)華亭)은 풍산천이 낙동강과 만나기 전, 너른 풍산벌판이 막 시작되는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도로가 나버리면서 풍산천이 정자가 기대고 있는 절벽과 어우러져 벌판으로 빠져나가는 절경을 잃어버렸지만 방지(方池)의 크기만으로도 충분히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이 집은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죽서 이민적(竹西 李敏迪)이 지은 집이다. 이민적은 풍산천의 흐름을 그대로 살려 거기에 세 개의 석가산을 쌓고 정자의 연못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산에 도가의 이상향을 상징하는 세 산의 이름 즉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의 이름을 붙였다. 조선 원림에서 방지는 말 그대로 네모난 연못을 뜻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동그란 석가산을 만드는데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란 성리학적 자연관을 반영한다.

방지를 조성하는 데는 여간한 노력이 드는 게 아니다. 깊이도, 넓이도 어느 정도 확보하려면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민적은 있는 그대로의 개천에 섬 세 개를 만들면서 간단하게 우주론적인 방지를 확보했다.

그리고 그 옆에 정자를 지었는데, 아마도 이민적은 대단히 호방한 성격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정자를 짓기 위해서 먼저 기단을 쌓았는데 그 단이 두 개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반누각식의 짧은 기둥을 세우고 정자의 바닥을 올렸다. 그러니까 체화정은 두 개의 단을 오르고도 한 번 더 올라야 정자에 오를 수 있다. 방지의 삼신산이 수평적으로 펼쳐졌다면, 정자에서는 수직적으로 겹쳐져 있다.

체화정에서의 두 단과 마루는 역시 각각 방장산과 봉래산과 영주산을 상징한다. 연못뿐 만이 아니라 집 자체를 아예 유토피아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집의 규모를 가로로 반으로 나누어 전면 한 칸 전체를 마루로 만들어 놓은 이유다. 그래야 세 산의 상징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가로 세 칸 중 가운데를 방으로 만들고, 양 옆에 마루방을 들였다. 다시 세 단계의 구조가 수평적으로 반복되며 비로소 생활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체화정이란 당호는 ‘시경’ ‘소아(小雅)’에서 주공이 노래한 “아가위꽃(常(체,태))의 화려함이여, 꽃받침이 화사하지 않은가”에서 따온 것으로 꽃과 꽃받침은 형제의 우애를 상징한다. 이 집에서 김홍도의 글씨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체화정을 찾는 즐거움 중 하나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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