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석재은]돈은 돈대로 쓰고 욕먹는 보육정책

  • Array
  • 입력 2012년 3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민간어린이집 원장 대표들이 당초 29일로 예정되어 있던 집단휴원을 철회함에 따라 일단 ‘육아대란’은 피하게 됐다. 그러나 어린이집 측은 낮은 보육료로는 낮은 보육서비스만 제공할 수 있어 부모와 어린이집 모두가 불만이라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부는 어린이집 측의 핵심 요구인 비용 인상은 들어줄 수 없다는 방침이다. 이번 집단휴원 소동은 일단락되었지만, 민간어린이집 측과 복지부가 근본적 문제 인식을 달리하고 있어 언제든지 재연될 불씨를 가지고 있다.

정부는 국가의 미래를 위협하는 저출산에 대응하여 아동 양육 부담을 사회가 함께 책임진다는 관점에서 보육에 대한 국가 지원을 대폭적으로 늘려 왔다. 올해 초에도 보육정책을 강조한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 이후 정부는 2012년 3월부터 0∼2세 무상보육, 만 5세 누리과정 도입과 소득계층에 관계없이 20만 원씩 지원, 2013년 3, 4세에게도 누리과정 확대 및 보편적 보육비 지원계획 등을 연이어 발표했다. 그런데 연 7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투자되는 보육정책의 전폭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나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기만 하다.

정부의 전폭적인 보육 투자가 환영받기보다는 비판을 더 많이 받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은 ‘돈은 돈대로 쓰면서 효과도 없는 비효율적인 정책’일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부가 보육에 엄청난 돈은 쓴다는데 정작 이용자인 부모들의 보육 욕구 충족과는 잘 맞지 않아 혜택을 체감하기 어렵고, 민간보육기관은 정부의 보육단가로는 질 높은 보육을 하기 어려운데 질 낮은 보육에 대한 비난과 책임은 자신들이 져야 한다고 불만이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미 이익집단화된 보육업계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한 보육시장 시스템과 더불어, 영리민간기관이 압도적인 보육서비스 공급체계의 난맥상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보육정책은 당초 정책 의도와는 달리 상당한 규모의 국가 및 지자체 보육재정이 거대해진 민간보육업계의 생존경영을 위해 소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보육에 대한 사회적 투자가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확대되는 것은 대단히 반길 만한 일이다. 문제는 공공재원이 누구에게, 누구에 의해, 어떠한 방식으로 전달되고 얼마나 투입되어야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보육정책’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다시금 짚어봐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보육정책이 혁신적 발전을 이룬 지금 이 시점에서 보육정책의 틀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 해답의 일단은 ‘보육’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아동을 양육하는 매우 숭고한 일’이라는 도덕적 사명감이 우선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보육서비스 공급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댄 애리얼리가 저서 ‘상식 밖의 경제학’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사회규범과 시장규칙이 충돌할 때는 사회규범이 밀린다. 따라서 시장논리보다는 보육의 공공성, 보육의 사회규범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보육의 공공성을 회복할 것인가는 또 다른 차원의 논의를 필요로 하지만, 보육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보육의 사회규범을 확립할 수 있는 보육서비스 공급체계에 대한 정비가 우선되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비효율적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보육정책의 예는 노인 장기요양, 장애인, 산모 등 여타 돌봄서비스 정책에도 모두 확대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보육정책의 선도적 행보를 기대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