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철희]앙콜라 듀엣과 北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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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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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정치부 차장
이철희 정치부 차장
지난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프랑스 파리를 방문해 4월 22일 대선을 앞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낮은 지지율로 재선 가도에 적신호가 켜진 사르코지 구하기 행보였다. 메르켈은 “우리는 같은 (우파) 가족이다. 모든 측면에서 그를 지지한다”고 밝혔고, 사르코지는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나를 지지해줘 기쁘다”고 화답했다.

메르켈은 ‘남의 나라 대선에 웬 간섭이냐’는 비판을 의식한 듯 “친구 정당을 지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간 두 사람이 보여준 각종 정책 공조를 일컬어 ‘메르코지(메르켈+사르코지) 연대’라 불렀지만 이 정도면 가히 ‘앙콜라(앙겔라+니콜라) 듀엣’ 수준이다.

사실 한 나라 정상이 다른 나라의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선 20여 년 전부터 흔히 있던 장면이고, 이번 메르켈의 지원도 2009년 독일 총선 때 사르코지가 베를린을 방문해 지지 연설을 해준 데 대한 보답 차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2004년 우크라이나 대선 당시 친(親)러시아 후보를 적극 지지했고,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페루와 니카라과 선거에 여러 차례 개입했다.

앙콜라 커플의 독-프랑스 관계는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의 ‘북한 변수’를 떠올리게 한다. 역대 선거에서 ‘북풍(北風)’이라 불린 북한 변수는 그것이 의도된 것이든 우연이든 선거판 민심을 출렁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권교체를 두 차례나 경험한 한국 정치에서 북풍의 양상은 크게 변화했다.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북한의 무력도발과 테러행위, 간첩단 사건 등은 선거 때마다 집권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북한은 겉으론 보수정권을 비난하면서도 실제론 남한 국민의 안보심리를 자극해 보수정권의 연장을 도왔다. 남북의 집권세력이 서로 긴장과 대결을 통해 대내적 단결과 정권 안정화를 꾀하는 ‘적대적 의존관계’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남측 집권세력도 북한 변수를 이용하려는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측에서 북한과 비밀리에 교섭해 총격전 같은 무력시위를 벌여 달라고 부탁한 이른바 ‘총풍 사건’이 기획됐다는 사실은 남북 집권세력의 공생관계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반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선 북한의 위협·도발을 대신해 평화·화해라는 새로운 북풍이 불었다. 2000년 총선 사흘 전에 발표된 1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 그리고 2007년 대선 두 달 전에 이뤄진 2차 남북 정상회담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화해의 바람은 미풍에 그쳤고, 오히려 선거에는 역풍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다시 과거 패턴의 북풍이 부는 듯했지만 결과는 과거와 달랐다.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 두 달 뒤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패배했다. 북한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보수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였지만 그 결과는 ‘북한 관리’에 실패한 정부 여당에 대한 반대여론의 표출로 나타났다.

북한은 근래 남측의 당국 간 대화 제의에 “이명박 패당은 관계개선을 말할 자격을 영영 상실했다”고 쏘아붙이고 있다. 여당에 대한 비방도 한층 거칠어지고 있다. 북한이 다시 북풍에의 유혹을 느끼고 있다는 징후도 엿보인다. 그러나 북풍이 일시적 혼란을 가져올지언정 더는 위력을 가지기 어렵고 자충수를 낳을 뿐임을 역대 선거 결과는 증명하고 있다.

이철희 정치부 차장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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