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어준 ‘잡놈 권력’이 환호받는 사회와 國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3일 03시 00분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최근 ‘판사, 니들이 뭔데’라는 책을 냈다. 석궁 테러로 판사에게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힌 사람이 대법원장 등 판검사들을 ‘3류 문서위조 사기꾼’이라고 비난하고 “판사, 니들 그렇게 까불다가는 뒈지는 수가 있어”라고 막말을 했다. 그는 “비난해야 할 상황에서 욕하는 것이 뭐가 잘못됐다고 지랄인가”라는 말까지 곁들여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한 사람인지 의심이 든다. 이런 사람을 미화한 영화에 관객이 꽤 들고 있으니 우리 사회의 품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욕설과 막말이 갈수록 그악스러워지고 있다. 여성 비하 논란을 일으킨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 씨는 사과는커녕 “우리가 잡놈이긴 하다”며 “성적 농담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했다. ‘나꼼수’는 ‘눈이 찢어진 아이’ 등 팩트를 무시한 유언비어를 남발한다. 풍자나 비판도 팩트에 바탕을 두어야지, 거짓을 퍼뜨리는 것은 ‘인터넷 권력’의 횡포다. 진보좌파를 자처하며 거짓과 저질 발언을 일삼아 진보진영 전체의 품격과 신뢰를 떨어뜨린다.

나꼼수의 영향인지 판사 교수 정치인 언론인들까지 입에 담기 험한 말을 쏟아내는 반(反)지성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깽판’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 같은 노무현 대통령의 막말 때문에 국민이 낯을 붉혔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이 폭넓은 지지와 존경을 받지 못한 큰 이유 중 하나가 정제되지 않은 언어 때문이었다. 덜 성숙된 10대들이 환호하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까지 합세하니 온 나라에 나꼼수의 하수(下水)가 넘쳐흐르는 듯하다.

나꼼수 멤버들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허위의 사실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범죄다. 언어는 의미 전달 기능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낸다. 우리 사회에서 나꼼수의 말투를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따라하기 시작해 이 나라에 ‘잡놈’의 저질 언어가 판을 치면 숙의(熟議) 민주주의와 진정한 소통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부모들은 자녀가 욕설이나 막말을 쓰는 걸 보면 “부모 얼굴에 침 뱉는 짓”이라고 야단을 친다. 저질 언어를 남발하는 사람들은 지금 자신의 부모 얼굴에,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에 침을 뱉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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