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륜 있는 법관, 재판 일선 오래 지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9일 03시 00분


조용호 광주고법원장 등 법원장 5명이 16일자로 고법 부장판사로 돌아와 재판 업무를 다시 맡는다. 법원에는 기수 문화라는 게 남아 있어 판사들은 아래 기수가 대법관이 되면 사퇴하는 관행이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난해 김용덕 법원행정처 차장을 대법관 후보로 제청하면서 그보다 위 기수인 법원장들에게 법원에 남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했다. 4명은 사퇴했지만 5명은 남아 양 대법원장 취임 이후 추진한 평생법관제가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30년 가까이 경륜을 쌓은 법원장급 법관들이 한창 일할 나이인 50대 중후반에 옷을 벗고 나가면 법원의 역량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법 불신의 가장 큰 원인인 전관예우의 폐단도 여기서 비롯된다. 미국처럼 한번 법관이 되면 평생 근무하는 나라에는 전관예우가 없다. 선배 판사가 중도에 옷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하니까 후배 판사들이 영향을 받아 전관예우가 생긴다.

법관의 사직(辭職)으로 빈자리를 사법연수원 수료생들이 아래서부터 채우는 임용 방식도 문제다. 청춘을 고시 책에 파묻고 보낸 뒤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나이에 판사가 되다 보니 국민이 공감하지 못하는 판결이 나온다. 대통령을 향해 ‘가카의 빅엿’이라고 욕을 한 서기호 서울북부지법 판사가 임용 10년째를 맞아 재임용 심사를 받고 있다. 소송 당사자를 위해서는 겨우 72자의 판결 이유를 쓴 판사가 자신을 소명하는 데는 100쪽 이상의 자료를 제출했다. 그의 돌출행동은 경륜 부족과 무관하지 않다.

평생법관제는 내년부터 추진되는 법조 일원화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2021년까지 순차적으로 법관 임용 자격에 3, 5, 7년의 법조 경력을 요구하고 2022년부터는 10년의 법조 경력을 갖춰야 법관에 임용된다. 법관이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평생법관제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

2004년 최종영 대법원장이 인사지침 형태로 평생법관제를 도입했으나 법원장을 마치고 재판에 복귀한 법원장은 1명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1년 남짓 하다가 그만뒀다. 이번에 재판 업무에 복귀한 법원장들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정년까지 근무하는 모범을 보여주길 바란다. 법원도 이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경륜 있는 법관들이 오래 법대(法臺)를 지켜야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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