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곽금주]작은 위로가 죽음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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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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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자살 빈도가 가장 높았던 서울 노원구의 자살률이 최근 떨어졌다고 한다. 노원구는 지난 3년간 만 65세 이상 홀몸노인을 대상으로 ‘마음건강 평가’를 실시해 통장들이 이들 집을 일일이 직접 찾아다니며 안부를 묻고 마음상태를 체크했다는데, 바로 그 성과라고 한다. 누군가 자신을 찾아와 따뜻한 말을 건네주고 자신의 상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것, 바로 그것이 위안이 되고 외로움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외로움을 견디게 해주는 힘

때론 아주 짧은 한마디조차도, 그리고 아주 미약한 한 사람의 위로조차도 매우 큰 힘을 발휘한다. 버클리대의 심리학자 앨리슨 고프닉은 어느 날 학교와 집에서 여러 골칫거리가 한꺼번에 생겨서 너무나 속상한 나머지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그때 거실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던 두 살배기 아들이 갑자기 집에 있는 구급상자를 가져와서 반창고를 꺼내 온몸 여기저기에 붙여 주었다고 한다. 고프닉 교수는 그 순간 어린 말썽꾸러기의 행동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지 쉽게 울음을 그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아들이 정신없이 붙인 반창고는 가히 ‘만능 반창고’였다. 비슷한 경우로 러시아의 영장류학자 나디아 코츠도 집안에서 길렀던 어린 침팬지가 코츠가 울고 있을 때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것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렇게 어린 아기들, 동물들이 보이는 작은 위로에도 우리의 마음은 쉽게 움직이곤 한다.

타인과의 관계는 인간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특히 타인과의 관계의 질과 양은 다양한 질병 발병률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망률까지 낮춘다. 반대로 사회적으로 배척된 사람들의 사망률이 상승했다는 보고도 있다. 이는 타인이 자신에게 보이는 관심과 지지가 스트레스를 완충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보호받고 있고 사랑받고 있다’라는 생각은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적절하게 대처하고 적응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버팀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위로가 위로받는 사람뿐 아니라 위로하는 사람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남자친구가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한 후 여성 파트너의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했다. 이때 여성들은 두 집단, 즉 남자친구에게 사회적 지지를 제공하도록 남자친구의 팔을 잡을 수 있었던 집단과 그냥 고무공을 잡고 있게 했던 집단으로 나누어졌다. 그 결과, 고통스러워하는 남자친구에게 사회적 지지를 제공할 수 있었던 여성들의 경우 대뇌 보상중추의 위협 또는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주는 중격 부위가 훨씬 더 활성화됐다. 이처럼 사회적 지지의 이득은 ‘받는 사람’에 국한되지 않고 ‘제공자’에게도 미친다. UCLA 심리학과의 아이젠버거 교수도 사회적 지지가 우리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흔히 생각하듯 타인으로부터 지지를 받았을 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사회적 지지에서 오는 이득은 ‘내’가 타인에게 그것을 제공했을 때에도 생겨난다.

‘따뜻한 말’ 우리 모두에게 영향

위로는 꼭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바라봐주는 눈길, 따뜻하게 건네는 한마디 말로도 충분하다. 우리 사회 도처에 있는 외로운 사람들,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에 지친 청소년, 겨울나기가 힘겨운 실직자, 그리고 쉽게 배척받곤 하는 다문화 구성원들…, 그들의 추운 겨울을 녹이는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일 수 있다. 위로의 온기는 상대와 나, 모두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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