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샘물]‘다문화 동화’ 정책 담당자만 차별인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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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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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샘물 교육복지부 기자
이샘물 교육복지부 기자
3일 한국건강가정진흥원 관계자로부터 항의인지 해명인지 모를 전화를 받았다. 이날 신문에 실린 ‘다문화 인식개선 동화’ 기사에 대한 주최 측의 피드백인 셈이다.

▶본보 3일자 A1면 아이들이 읽을까 겁나는…

“책을 읽었느냐. 책을 읽어보면 내용이 좋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동화의 취지가 좋아 표현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자는 동화책을 세 번 읽었다고 답변했다. 그래도 한국건강가정진흥원 관계자는 전체적인 주제가 좋기에 거칠고 차별적인 표현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심지어 “일상에서 아이들은 더 심한 말도 쓰지 않느냐”고 항변하기까지 했다.

같은 날 미국에 있는 독자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그 독자는 한 교육대학원에서 다문화 교육을 가르친다고 했다. 그는 100여 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로스앤젤레스 교육청 소속의 학생들에게 어떻게 다문화 교육을 하는지 소개한 뒤 이렇게 말했다.

“중립적인 단어 선택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우열을 조장하거나 선입관을 만들어 줘서도 안 된다. 차별적인 표현으로 선입관을 만들면 교훈은 의미가 없다. 한국의 잘못된 다문화 교육이 답답하다.”

아이들은 편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재미가 있다면 나쁜 말도 빨리 익히고 고정관념도 쉽게 받아들인다. “우리 아이는 책을 읽고 나면 교훈보다는 놀리는 말을 먼저 익힌다”는 한 독자의 댓글 표현은 틀리지 않았다. 다문화 개선을 위해 만들어진 동화가 자칫 다른 국가에 대한 편견만 조장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인식 개선에 앞서 비하적인 표현들만 배울 수도 있지 않은가.

문제가 된 동화의 작가도 e메일을 보내왔다. 이 동화가 자신의 첫 작품이라는 작가는 “처음에는 동화의 내용과 취지는 무시하고 거친 몇몇 표현만 문제 삼는 것 같아 화가 났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단어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함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번 지적이 작가의 성장에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은 “책의 내용이 좋은데, 읽어봤느냐”만 되묻는다. 이 기관을 감독하는 여성가족부 책임자들은 “우리 부처 예산 사업이 아니어서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는 답을 내놨다.

2001년 8월 국가인권위원회는 황인종의 피부색을 뜻하는 ‘살색’이 인종 차별적 표현이라고 밝혔다. 2005년 이후 우리는 이 색상을 살구색으로 부른다. 한국건강가정진흥원과 여성부의 책임자들은 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큰 교훈은 바라지 않는다. 때로는 작은 말 한마디가 사람을 더 아프게 할 수 있다는 ‘작은 교훈’을 배우길 바란다.

이샘물 교육복지부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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