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샘물]폭력상담 받는데 아빠 학력은 왜 물어보나?

  • Array
  • 입력 2011년 12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샘물 교육복지부
이샘물 교육복지부
위기에 처한 청소년을 상대로 조언해 주는 서비스는 어디 없을까. 마침 온라인에 그런 곳이 있었다. 기자는 29일 서울시 청소년상담지원센터 홈페이지를 찾아 상담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청소년 동반자 신청하기’를 클릭했다.

신청 절차는 복잡했다. 상담을 받으려는 청소년은 경제 수준을 상중하 중에서 체크해야 했다. 지능이 우수한지 평균 이하인지도 선택해야 했고, 가족의 학력 직업 건강상태까지 입력해야 했다. 보호자가 동의했는지도 물었다. 울산지역의 센터는 부모의 월급도 물었다.

이 프로그램은 여성가족부가 2005년부터 지방자치단체와 예산을 절반씩 부담해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전국 166개 청소년상담지원센터가 실시하고 있다. 관리와 감독의 책임을 맡은 여성부는 상담 신청이 이렇게 ‘어려운지’ 알고 있을까.

여성부가 운영하는 청소년 상담전화 1388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니 청소년들이 올린 질문이 많이 눈에 띄었다. ‘부모님께도 말씀 못 드리는 일인데 1338, 믿을 만한가요?’ ‘전화해서 고민상담하는 거 기록에 남나요?’ ‘부모님이 알게 되면 어떡하죠?’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개인적 고민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청소년들이 부모의 월급이 얼마인지, 지능이 우수한지를 일일이 기입하면서까지 상담을 받으려 할까. 친구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20일 목숨을 끊은 대구의 중학생도 위기에 처한 청소년이었다.

사건이 터지자 김금래 여성부 장관은 28일 청소년 학교폭력과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회의를 가졌다. 전국 16개 시도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소장들이 참석했다. 그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한 뒤 여성부가 대책을 발표했다.

학교에 청소년상담지원센터에 소속된 전문 인력을 파견해 상담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청소년폭력 예방 전문가도 올해 492명에서 내년엔 600명으로 확대 양성한다고 한다. 이에 앞서 25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학교에 1800명의 전문 상담사를 배치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는데,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폭력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학생들은 대부분 부모와 교사에게도 속을 털어놓지 못했다. 가까운 사람과도 잘 소통하지 못하는데, 학교에 파견돼 온 낯선 사람에게 마음속 깊숙이 숨겨놓은 이야기를 꺼낼 청소년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 정부는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정책만 반복할 것인가. 용기를 내어 상담을 받으려는 청소년에게 가족 재산이나 묻는 ‘황당함’이 정부 대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답답하다.

이샘물 교육복지부 eve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