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 이것만은…/이광희]남수단에 교육문화센터 세워 여성 자립 도왔으면…

  • Array
  • 입력 2011년 12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탤런트 김혜자 따라 나섰다가 기아-빈곤 목격하고 충격
3년간 망고나무 심으며 봉사… 주민들에 희망 심어줘야지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광희 디자이너
이광희 디자이너
나는 어려서부터 딱히 이루고 싶은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장래희망을 써야 할 네모 칸이 있으면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단어들은 책임지기, 어려운 일 피하지 않기, 의미 없는 일 하지 않기, 그러면서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살기였다. 하루하루 생겨나는 작은 삶의 결실에서 기쁨을 찾으려 씨름을 하다 보니 그나마 오늘의 내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에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가 보다. 어느 날, 세계 각지의 어려운 곳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는 탤런트 김혜자 선생께서 “우리 아프리카에 같이 갈까?” 하기에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여행하는 마음으로 선뜻 따라나섰다.

이틀에 걸쳐 비행기를 네 번이나 갈아타고 내린 남수단의 ‘톤즈’라는 땅은 내가 상상하던 영화 속의 아프리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반갑다고 마중 나온 어린이들에게서는 낯선 냄새가 났다. 마실 물도 부족한 그곳 아프리카에는 어린이들이 세수할 물이 없어서, 그저 부지런한 애들만이 소가 오줌 누기를 기다렸다가 얼른 오줌으로 얼굴을 닦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건기(乾期)였다. 부모는 전쟁과 질병으로 모두 사망하고 단 한 줌의 잡곡으로 4남매가 한 달을 버텨야 건기를 벗어난다니,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곳이었다. 손이 모자라는 병원과 가정에 봉사를 다니다 잠시 길가에서 쉬고 있는데, 어떤 꼬마가 어디서 났는지 허리춤만 한 생선 한 마리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내 앞을 지나갔다. 그 꼬마의 표정이 하도 재미있어 장난치듯 말을 건넸다. “꼬마야, 그 생선 나 줄래?”

그런데 꼬마는 나를 보고 큰 눈을 끔뻑하더니 불쑥 생선을 내밀었다. 아프리카 수단의 건기는 모든 것이 메말랐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여러 날이 지나도록 먹을 것을 한 조각도 얻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선 한 마리는 그 아이가 가진 전부였다.

생명 같은 생선 한 마리. 그것을 감추려 하지도 않고, 달라는 말에 망설이지 않고 내주겠다고 손을 뻗는 아이의 반응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그 아이를 꼬옥 안았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서 불현듯 돌아가신 어머니를 뵈었다.

해남 땅끝마을 조그만 교회 목사의 아내로서, 6·25전쟁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수천 명의 고아와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느라 평생을 보내신 어머니. 어머니는 먹을 것이 생기면 보는 것으로 족하다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셨다. 또 입을 옷이 생기면 당신이 입기보다는 그날로 남에게 입히는 그런 삶을 사셨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지 어머니가 무슨 꿈을 가지고 계신지 알지 못했다.

막을 길 없이 눈물이 흐르던 내 눈에 아이의 뒤로 펼쳐진 수단의 땅이 보였다.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먼지가 피어오르는 척박한 대지 너머에 기적처럼 서 있는 거대한 망고나무. 한 번 뿌리를 내리면 100년 동안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늘과 열매를 준다는 기적의 나무다.

‘망고나무를 심어 줄게.’ 이것이 자기의 모든 것을 선뜻 내어준 꼬마 친구의 마음에 화답하는 내 마음의 약속이었다. 그 후로 3년 동안 부지런히 망고나무를 심었다. 자연스레 주변에서 도와주겠다는 후원자들이 많이 생겼고, 이제는 ‘희망의 망고나무(희망고)’라는 사단법인까지 만들었다. 꾸준함과 진정성을 인정받아 남수단 정부로부터 국제 비정부기구(NGO) 인증을 받았고, 복합교육문화센터 ‘희망고 빌리지’를 세울 1만 평가량의 대지를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남수단은 여성들의 생활력이 강하기 때문에, 희망고 빌리지에서 여성들을 가르쳐 자립을 도울 계획이다. 전쟁과 기아와 질병으로 희망을 잃었던 그곳 사람들은 이제 ‘호프(hope)’라는 영어 단어 대신에 우리말 ‘희망’을 외친다.

이제라도 어머니의 꿈을 깨닫고, 함께 그 꿈을 이루어 나가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도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꿈과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광희 디자이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