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광표]경주와 ‘神國의 땅’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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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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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문화부 차장
이광표 문화부 차장
지난 주말 경북 경주에 다녀왔다. 이번엔 박물관이나 문화유적 대신에 공연과 전시를 보았다. 신라를 소재로 한 전통 뮤지컬, 경주 왕릉과 소나무 사진이 매력적인 배병우 사진전이었다.

신경주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공연장으로 향했다. 정동극장이 무대에 올리고 있는 ‘신국(神國)의 땅, 신라’. 1000년 신라의 건국신화, 화랑의 호국정신과 비극적인 사랑, 해동(海東)의 빛이 된 신라문화 등을 소재로 스토리가 이어졌다.

6월 경주 대릉원에서 단원들의 연습 장면을 보았고 8월엔 공연을 보았다. 이번에 다시 보니 8월 공연보다 훨씬 더 세련됐고 박진감이 넘쳤다. 발레오전장시스템즈코리아 직원들은 이 공연 관람으로 문화송년회를 대신했다. 그래서 700여 객석이 꽉 찼다.

공연을 보는 동안, 작년 여름 중국 시안(西安)에서 보았던 ‘산시 가무쇼’ 공연이 떠올랐다. 중국 당나라의 역사, 양귀비와 현종의 사랑 등을 소재로 한 내용이었다. 객석은 거의 찼고 그 절반은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우리의 역사 고도엔 왜 이런 상설공연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중국의 시안이나 둔황(敦煌), 일본의 교토(京都)에 가면 역사와 문화재를 소재로 한 야간 공연이 매일 열린다. 관광객들은 여행 일정 중 하루를 골라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 공연들을 본다. 고품격 공연도 있고 대중적인 공연도 있지만 역사고도에서 매일 이런 공연이 열린다는 게 늘 부러웠다.

다행스럽게 올해 7월 경주에서 신라를 소재로 한 상설공연이 시작됐다. 바로 ‘신국의 땅, 신라’다. 국내의 역사고도에서 역사를 소재로 한 공연이 연중무휴 매일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1년 내내 매일 공연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에서의 공연보다 훨씬 어렵고 여건도 열악하다. 관광 비수기가 되면 객석이 썰렁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공연은 과감한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아름답고 가치 있는 도전이다. 따라서 관객 수가 이 공연의 평가 기준이어선 안 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천년고도 경주엔 이 같은 상설 공연이 꼭 있어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 그 중요한 한 축은 문화유적 답사 관광이다. 경주는 그중에서도 핵심이 아닐 수 없다. 이 공연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크다. 이 실험과 도전은 성공해야 한다. 시안이나 교토뿐 아니라 우리의 경주에도 이런 공연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은 천년고도 경주의 자존심이다. 실험을 시작한 지 6개월. 2011년이 저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정동극장, 문화체육관광부뿐만 아니라 경주시,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정동극장은 제주에서도 이러한 상설공연을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충남 부여나 공주에서도 이런 공연이 열렸으면 좋겠다. 매일 공연이 어렵다면 주말 공연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사진전을 본 뒤 경주지역의 화가, 건축가, 의사, 큐레이터 그리고 서울에서 내려간 출판인과 함께 밤늦도록 얘기를 나눴다. “‘신국의 땅’의 전용 공연장이 필요하다”는 얘기부터 “경주 거리 디자인을 재검토해봐야 한다”는 얘기까지. 직업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달랐지만 마음은 한결같았다. ‘신국의 땅‘은 고도 경주의 자존심이어야 하고, 경주는 1000만 관광객 시대 한국의 자존심이어야 한다는 것!

이광표 문화부 차장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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