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악어를 집적거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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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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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정계 진출 가능성을 놓고 정작 본인은 침묵과 부인을 거듭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계의 유혹과 견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찬성과 반대에 관한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

“안철수 원장이 대통령이 될 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인슈타인이 미국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 것과 같다.”(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안철수 원장이 정치권에서 뜨는 것은 사회적으로 잘못된 것이다.”(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

“과학자는 과학을 해야 한다.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며 “과학을 잘해서 국리민복 증진에 기여하고 일자리라도 더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그 주장에 한국의 과학자들이 왜 발끈할까? 먼저 외국의 석학에게 물어보자. “과학자는 정치를 하면 안 되나요?”

‘과학자는 혹시 무엇을 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를 몹시 찾고 싶어 하는 성미의 소유자인 동시에 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 때까지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영국의 과학자이자 정치가인 찰스 스노는 정치에도 과학적인 접근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도 미래를 예측하고 제도를 시험하고 수정하는 과학적인 방식으로 정치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전제하고, 그 ‘열린 사회’를 부정하는 세력을 ‘적’으로 규정했다.

대통령으로 추대된 두 과학자에게 물어보자. 아인슈타인은 “나는 자연에 대해선 좀 알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스라엘) 대통령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사양했지만 ‘잘나가는’ 과학자였던 허버트 후버는 미국의 3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콜로라도 강의 후버 댐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번개 치는 날 연날리기 실험으로 유명한 과학자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에서 ‘대통령이 아닌 유일한 대통령’으로 존경받고 있다. 정치인으로 미국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만드는 데 참여했던 그는 100달러짜리 지폐의 주인공으로 아직도 사랑받고 있다.

과학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 신뢰는 사실 굳건하다. 사회는 공정하지 않고 정치는 썩을 대로 썩어도 과학만은 절대로 우리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런 기대가 안철수 원장의 정계 진출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둘러싼 여론의 배경이기도 하다.

그가 과연 정치에 뛰어들까? ‘강가에서 살 작정이라면 악어와 친구가 돼야 한다.’ 인도 속담이다. ‘바른생활’ 과학자 이미지의 안 원장은 도무지 악어와 친구가 될 것 같지 않다. 악어 떼에 섞여 흙탕물을 튀기며 뒹구는 그 자체가 그에게는 치명적인 오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악어를 무찔러야 한다. ‘영혼이 있는 승부’를 원하는 안 원장이 악어를 무찌르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그것은 동화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다. 안 원장이 ‘정글북’의 모글리처럼 사악한 호랑이 시어 칸을 무찌르는 장면을 보고 싶은가?

강가에서 살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악어와 친구가 되라고 종용할 필요도 없고 악어를 무찔러야 한다는 신탁(神託)을 강요할 이유도 없다. 강가에서 살 작정이라면 안 원장은 ‘슈퍼 악어’가 되어야 한다. 슈퍼 악어는 악어를 무찌르는 게 아니라 악어를 거느리는 ‘악어의 왕’이다. 그런데 안 원장에게 이 ‘징그러운 왕관’이 어울리는지.

그러니 ‘강을 다 건너기 전까지는 악어를 집적거리지 마라.’ 1945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미국의 정치인 코델 헐의 조언이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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