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상일]만기 못채우는 세입자에 중개수수료 떠넘기지 말아야

  • Array
  • 입력 2011년 11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상일 한국부동산법학회 부회장
이상일 한국부동산법학회 부회장
주택 전세금이 치솟고 있다. 지난달 전세금은 전월 대비 1.1% 올라 집 없는 서민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와중에 임대인이 응당 지불해야 할 중개수수료마저 임차인에게 전가하는 횡포가 부동산시장에서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있다. 주택 임대차기간에 세입자의 사정에 따라 부득이 임차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불과 만기 몇 개월 전에 계약을 해지할 경우 새로 체결하는 임대차 중개수수료 모두를 임차인에게 부담시키고 있는 것이다.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거래신고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중개수수료는 계약 체결 당사자인 임대인과 임차인이 부담토록 명시하고 있다. 신규 임대차는 소유주인 임대인과 새 임차인 사이에 체결되므로 종전 임차인이 지불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다만 민법에 따라 계약기간에 임차인이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입을 임대인의 손해는 임차인이 배상해야 한다. 하지만 남은 계약기간을 고려하지 않고 손해배상(액)이 중개수수료 부담이라는 등식은 아무리 봐도 무리가 있다.

요즘처럼 전세금이 날로 치솟는 상황이라면 신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임대인은 이익을 보게 된다. 그런데도 실제 손해액은 따져보지도 않고, 심지어 계약 종료기간이 1개월도 남지 않는 때마저 소위 손해배상이란 명목으로 신규 임대차 중개수수료 전액을 임차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다분히 임차인의 반발도 이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국토해양부는 임대인이 우월적 위치에 있는 시장의 관행과는 사뭇 다른 견해를 밝히고 있다. 법제처 해석을 근거로 중개수수료는 ‘임대인 측이 부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판례(서울지방법원 민사9부 1998년 7월 1일)도 임대인 부담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계약기간이 3개월 정도 남았다면 임대인은 어차피 새로운 임차인과 임대차계약 체결을 위해 중개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므로 임차인이 중개수수료를 부담하여야 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그런데도 전국의 일부 부동산업소에서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많은 중개수수료를 임차인에게 모두 부담시키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임대인의 과욕과 우월적 지위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임대인의 과욕이 관행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데는 일부 중개인의 업무 편의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개인은 중개수수료를 누가 내든 상관하지 않을 바에야 임대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아야 다음 중개 의뢰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임대인의 편에 서서 떠나는 임차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아야 한다.

주택 임대차기간은 법적으로 2년이 보장돼 있다. 물론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법으로 제정한 것이다. 그러나 때론 2년이란 기간이 임차인의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예측 못한 사정 변경으로 2년을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임대인이 이를 악용하고 있다. 즉, 신규 중개수수료를 임차인이 부담하지 않으면 계약 해지를 아예 받아주지 않는 식이다 보니 임차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중개수수료를 부담하고 있다. 이는 임대인의 횡포에 가깝다.

차제에 관계법령의 개정도 검토해봄 직하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임대차 계약기간(2년)이 종료된 후 묵시적 계약 갱신이 됐을 경우 임차인에게 주어지는 계약해지권을 명시적 계약기간 중이더라도 계약 후 1년이 지나면 임차인에게 주는 방안이다. 이 경우 해지 통보 후 3개월 정도 지나면 해지 효력이 발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예기치 못한 임대인의 손해와도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공정한 사회의 출발이다. 임대인에게 큰 손해가 아니라면 임차인이 부당한 부담을 하지 않게 해야 한다. 정부 당국도 사소한 부분으로 치부해 사적 자치 영역에만 둘 것이 아니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약자의 애로를 사회 구석구석에서 찾아 보듬을 줄 알아야 한다.

이상일 한국부동산법학회 부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